빛에 매달린 화업 50년…"光은 생명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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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화가 방혜자 씨 개인전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날마다 화구 앞에 앉아 가을 햇빛을 마주하는 원로 서양화가 방혜자 씨(74).오는 4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본관에서 개인전을 갖는 그는 "작은 빛 한 점을 그리는 것은 사랑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1961년 파리로 건너가 국립미술학교에서 벽화와 응용미술학을 배운 그는 50여년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해왔다. 국내외 화단에서는 한지(닥지)와 부직포 등을 사용해 빛과 생명,우주를 묘사하는 '빛의 화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작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빛은 사물을 비추지만 우리는 도처에서 우리를 비추는 빛을 주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어릴 때 꽃을 따러 아차산에 자주 갔고 주변 개울가에서도 많이 놀았습니다. 맑은 물 속에서 빛나던 돌,수면을 스치는 빛들을 바라보곤 했지요. 그 빛이 그렇게 신비스러울 수가 없었어요. 햇빛이 물 위에 어리는 모습에 경탄하고,반짝거리는 햇살의 느낌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궁리했죠."
그는 광복 전 서울 능동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노래와 서예를 즐겼고,할아버지는 그림을 그렸다. 시인인 사촌 오빠는 어린 그를 데리고 산책하며 문학의 세계를 알려줬다.
"원래 저는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쓸 생각이었요.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미술교사였던 김창억 선생님을 만나 운명이 바뀌었죠.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마음의 빛으로 그리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 화필을 잡았어요. "
어린시절 이 같은 빛에 대한 감흥은 반세기 화업 내내 이어졌다. 그가 빛의 미학을 자신의 문화적 뿌리로 의식하게 된 것은 파리에서였다.
"하루 하루가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화포를 살 돈이 없어 이따금 치마폭을 잘라 그림을 그려야 했죠.빛의 이미지를 살려내려 지붕 밑 다락방에서 작업했고 프랑스인과 결혼한 후에도 아이 젖 먹이는 시간만 빼고 그림 그리는 데 시간을 다 바쳤습니다. "
그는 "빛은 색이자 에너지이며 생명의 근원"이라며 "파리 시절 빛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프레스코화를 비롯해 이콘화,판화,채색유리 등 다양한 화법을 닥치는 대로 익혔다"고 말했다. 중국의 석도(石濤)나 팔대산인(八大山人),겸재,추사 등의 음영기법도 섭렵했다. 한지(닥지)와 부직포,흙과 광물성 천연안료,식물성 염료 등을 아우르며 빛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는 연구도 계속했다. 법정 스님과 소설가 박경리,박완서 씨 등 문화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으며 세상을 비추는 '구도자적인 빛'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는 "법정 스님과는 1961년 국립도서관에서 연 첫 개인전에서 만났다"며 "길상사 파리 분원을 개원할 때도 '프랑스니까 탱화도 추상화가 어떻겠느냐'는 스님의 제안 덕분에 '빛을 뿜어내는 탱화'를 그리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의 빛은 자연 현상뿐만 아니라 명상과 구도의 자세를 통한 내면의 빛까지 응축하고 있다. 절제되고 은은한 색채로 표현한 빛과 우주적인 이미지는 그래서 관람객의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빛의 울림'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2008년부터 작업한 광선과 불꽃 이미지,빛의 입자,숨결,에너지 등을 형상화한 추상화 50여점을 내보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1961년 파리로 건너가 국립미술학교에서 벽화와 응용미술학을 배운 그는 50여년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해왔다. 국내외 화단에서는 한지(닥지)와 부직포 등을 사용해 빛과 생명,우주를 묘사하는 '빛의 화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작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빛은 사물을 비추지만 우리는 도처에서 우리를 비추는 빛을 주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어릴 때 꽃을 따러 아차산에 자주 갔고 주변 개울가에서도 많이 놀았습니다. 맑은 물 속에서 빛나던 돌,수면을 스치는 빛들을 바라보곤 했지요. 그 빛이 그렇게 신비스러울 수가 없었어요. 햇빛이 물 위에 어리는 모습에 경탄하고,반짝거리는 햇살의 느낌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궁리했죠."
그는 광복 전 서울 능동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노래와 서예를 즐겼고,할아버지는 그림을 그렸다. 시인인 사촌 오빠는 어린 그를 데리고 산책하며 문학의 세계를 알려줬다.
"원래 저는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쓸 생각이었요.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미술교사였던 김창억 선생님을 만나 운명이 바뀌었죠.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마음의 빛으로 그리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 화필을 잡았어요. "
어린시절 이 같은 빛에 대한 감흥은 반세기 화업 내내 이어졌다. 그가 빛의 미학을 자신의 문화적 뿌리로 의식하게 된 것은 파리에서였다.
"하루 하루가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화포를 살 돈이 없어 이따금 치마폭을 잘라 그림을 그려야 했죠.빛의 이미지를 살려내려 지붕 밑 다락방에서 작업했고 프랑스인과 결혼한 후에도 아이 젖 먹이는 시간만 빼고 그림 그리는 데 시간을 다 바쳤습니다. "
그는 "빛은 색이자 에너지이며 생명의 근원"이라며 "파리 시절 빛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프레스코화를 비롯해 이콘화,판화,채색유리 등 다양한 화법을 닥치는 대로 익혔다"고 말했다. 중국의 석도(石濤)나 팔대산인(八大山人),겸재,추사 등의 음영기법도 섭렵했다. 한지(닥지)와 부직포,흙과 광물성 천연안료,식물성 염료 등을 아우르며 빛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는 연구도 계속했다. 법정 스님과 소설가 박경리,박완서 씨 등 문화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으며 세상을 비추는 '구도자적인 빛'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는 "법정 스님과는 1961년 국립도서관에서 연 첫 개인전에서 만났다"며 "길상사 파리 분원을 개원할 때도 '프랑스니까 탱화도 추상화가 어떻겠느냐'는 스님의 제안 덕분에 '빛을 뿜어내는 탱화'를 그리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의 빛은 자연 현상뿐만 아니라 명상과 구도의 자세를 통한 내면의 빛까지 응축하고 있다. 절제되고 은은한 색채로 표현한 빛과 우주적인 이미지는 그래서 관람객의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빛의 울림'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2008년부터 작업한 광선과 불꽃 이미지,빛의 입자,숨결,에너지 등을 형상화한 추상화 50여점을 내보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