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은 선인들 지혜의 寶庫이자 인류 미래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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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 창시자 리처드 부스
"새책이 신간이라는 자부심을 앞세우는 데 비해 헌책은 지식과 지성을 대변하죠.새책이 자국의 경제를 촉진시킨다면 헌책은 전 세계에 지식을 전파하고 인류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어요. "
영국의 세계적인 책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의 창시자 리처드 부스(73 · 사진)는 지난 1일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린 책축제 '파주북소리 2011' 특별강연에서 "헌책은 자국의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을 능가하는 방대한 양의 지식을 제공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60년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평범한 시골 마을 헤이온와이의 소방서 건물을 사들여 책방을 열었다. 이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헌책을 사들이고 고성과 버려진 집,창고들을 고서점으로 바꿔 나갔다. 1976년 4월1일 만우절에는 '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헤이온와이를 고서왕국으로 명명했다.
책방 하나에서 시작한 헤이온와이는 세계적인 헌책방 마을이자 문화 거점으로 성장했다. 벨기에의 레뒤,네덜란드의 브레드보트,프랑스의 몽튈리외 등 헤이온와이를 벤치마킹한 책마을도 생겨났다.
그는 "만우절에 헤이온와이 독립을 선언한 것을 보면 그 컨셉트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아버지에게 책사랑을 배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파키스탄 주재 군 장교였어요. 생활의 2%는 군인으로서 의무를 했고,3%는 폴로를 즐겼죠.나머지 95%의 시간은 책을 읽는 데 쓰셨어요. 독서광이라고 할 수 있죠.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방 하나를 도서관식으로 꾸몄어요. 여자 형제들도 그런 분위기에 젖어 2명은 서적상을 하고 1명은 제본을 하고 있어요. "
그는 남다른 헌책 사랑과 관련해 "어린시절부터 새책을 사는 것을 꺼려했다"며 "당시 동네 출판업자가 새로 나온 신간을 편집해 5센트에 판매했기 때문에 굳이 새책을 살 이유가 없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브리티시박물관과 빅토리아박물관장을 지낸 친척에게 들은 얘기도 전했다. "1900년대 초 일본에서 도자기가 수입돼 들어왔는 데 도자기를 싼 포장지가 아름다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포장지가 헌책의 책장이었어요. 도자기보다 포장지가 더 값지게 보였다고 해요. 이를 통해 동양과 서양이 연결되는 느낌도 들었다고 했습니다. "
그는 "헌책이 갖고 있는 지적 사고능력"을 헤이온와이 책마을의 인기 비결로 꼽았다. 언어와 국경을 넘나들며 국가별 번역서로 되살아나는 헌책 속에는 오랜 기간 쌓인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그렇게 다양한 헌책을 접할 수 있는 '허브'가 헤이온와이기 때문에 주목받게 됐다는 설명이다.
1970년대 컨테이너를 이용한 무역 활성화도 한 요인으로 꼽았다. 무역에 컨테이너를 사용하게 되면서 더 많은 책들과 사람들이 오고갈 수 있게 돼 책마을이 활성화됐다는 얘기다.
그는 헤이온와이 책마을과 관광 활성화 문제에 대해 "책의 무한한 잠재력이 함께하는 장기적인 지적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상업적이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는 축제,경제적 이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산업은 폐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영국의 세계적인 책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의 창시자 리처드 부스(73 · 사진)는 지난 1일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린 책축제 '파주북소리 2011' 특별강연에서 "헌책은 자국의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을 능가하는 방대한 양의 지식을 제공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60년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평범한 시골 마을 헤이온와이의 소방서 건물을 사들여 책방을 열었다. 이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헌책을 사들이고 고성과 버려진 집,창고들을 고서점으로 바꿔 나갔다. 1976년 4월1일 만우절에는 '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헤이온와이를 고서왕국으로 명명했다.
책방 하나에서 시작한 헤이온와이는 세계적인 헌책방 마을이자 문화 거점으로 성장했다. 벨기에의 레뒤,네덜란드의 브레드보트,프랑스의 몽튈리외 등 헤이온와이를 벤치마킹한 책마을도 생겨났다.
그는 "만우절에 헤이온와이 독립을 선언한 것을 보면 그 컨셉트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아버지에게 책사랑을 배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파키스탄 주재 군 장교였어요. 생활의 2%는 군인으로서 의무를 했고,3%는 폴로를 즐겼죠.나머지 95%의 시간은 책을 읽는 데 쓰셨어요. 독서광이라고 할 수 있죠.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방 하나를 도서관식으로 꾸몄어요. 여자 형제들도 그런 분위기에 젖어 2명은 서적상을 하고 1명은 제본을 하고 있어요. "
그는 남다른 헌책 사랑과 관련해 "어린시절부터 새책을 사는 것을 꺼려했다"며 "당시 동네 출판업자가 새로 나온 신간을 편집해 5센트에 판매했기 때문에 굳이 새책을 살 이유가 없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브리티시박물관과 빅토리아박물관장을 지낸 친척에게 들은 얘기도 전했다. "1900년대 초 일본에서 도자기가 수입돼 들어왔는 데 도자기를 싼 포장지가 아름다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포장지가 헌책의 책장이었어요. 도자기보다 포장지가 더 값지게 보였다고 해요. 이를 통해 동양과 서양이 연결되는 느낌도 들었다고 했습니다. "
그는 "헌책이 갖고 있는 지적 사고능력"을 헤이온와이 책마을의 인기 비결로 꼽았다. 언어와 국경을 넘나들며 국가별 번역서로 되살아나는 헌책 속에는 오랜 기간 쌓인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그렇게 다양한 헌책을 접할 수 있는 '허브'가 헤이온와이기 때문에 주목받게 됐다는 설명이다.
1970년대 컨테이너를 이용한 무역 활성화도 한 요인으로 꼽았다. 무역에 컨테이너를 사용하게 되면서 더 많은 책들과 사람들이 오고갈 수 있게 돼 책마을이 활성화됐다는 얘기다.
그는 헤이온와이 책마을과 관광 활성화 문제에 대해 "책의 무한한 잠재력이 함께하는 장기적인 지적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상업적이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는 축제,경제적 이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산업은 폐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