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일어나소서.나의 하느님,구하여 주소서." "알렐루야(Al-le-lu-ia),알렐루야,알렐루야….'

프랑스 남동부 부르고뉴 지방의 작은 마을 테제(Taize)에 자리잡은 초교파 기독교 수행단체인 테제공동체 내 '화해의 교회'.지난달 29일(현지시간) 수사들이 청아한 목소리로 시편을 한 구절씩 영어,프랑스어,독일어,네덜란드어,스페인어로 부르자 사람들이 '알렐루야'로 화답한다. 테제공동체의 낮기도 시간이다.

찬양과 성경봉독에 이은 침묵의 시간.600여명의 기도 참여자들이 일제히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기도 시간이지만 통제나 간섭은 없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젊은이,눈을 감고 묵상하는 중년 남성,손을 잡거나 어깨를 기댄 젊은 남녀 등 저마다 편한 자세로 기도한다. 중요한 것은 침묵을 통한 내면의 발견이다. 사랑과 자비의 참뜻을 발견하고 역사와 문화,전통이 다른 곳에서 온 젊은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

"자비의 하느님,당신의 눈에는 하나하나의 인생이 귀하고 소중합니다. 이 진리에 따라 살고 이 사랑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도와주소서."

침묵에 이은 원장 수사의 기도는 한국어를 포함한 5개 국어로 낭송됐다. 테제공동체에선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침묵의 시간이 더 길다. 그런데도 전 세계에서 매주 2000~4000명,연간 10만여명의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무슨 까닭일까. 알로이스 원장 수사(57)는 "침묵 속에서 함께 기다림으로써 다양함 속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생명과 다름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어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와 인종,종교와 종파를 뛰어넘어 단순소박함과 기쁨,자비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그의 정신은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그 결과 테제공동체는 개신교와 가톨릭,정교회 등 기독교 교파 수사들의 수도공동체이자 타종교 신자나 무종교인들까지 함께 생활하는 독특한 공동체로 발전했다.

이날 테제공동체를 방문한 자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등 16명의 한국 스님들을 반갑게 맞이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알로이스 원장 수사는 "3년 전 한국에 갔을 때 해인사를 방문했는 데 불교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며 살려고 애쓰는 스님들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공동체 내부를 공개하고 스님들의 낮기도 참관도 허용했다.

테제공동체에는 약 30개국 출신의 수사 100여명이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기부나 헌금 등을 전혀 받지 않고 수사들이 도자기,성물,십자가 장신구,교회서적 등을 만들어 판 돈으로 운영한다. 이곳을 1주일 단위로 방문하는 젊은이들은 하루 5~8유로만 내면 된다. 공동체 안에는 1800명이 쉴 수 있는 숙소동과 야외 천막숙소,야영장 등이 있어 5000여명이 동시에 생활할 수 있다.

이들은 기도,묵상,소그룹대화,성가연습,주제별 워크숍 등으로 하루를 보내며 자신의 내면을 찾고 서로 대화한다. 공동체 곳곳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고 생기가 넘쳤다. 1주일 이내의 단기 방문자로 왔다가 수도자나 봉사자로 남는 경우도 많다.

테제공동체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야외에 마련된 식탁에서 자승 총무원장이 "오늘은 우리 만남의 시작이며 여러분 모두가 모든 일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바란다"고 인사하자 알로이스 원장 수사는 이렇게 화답했다. "기쁨과 단순 · 소박함,그리고 자비를!"

테제(프랑스)=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