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0세인 권금선 할머니는 지난 주말 오전 8시,여느 때보다 늦게 눈을 떴다. 그는 서울 건국대 앞 고급 시니어타운인 '더 클래식 500'에 산다. 권 할머니는 구내식당인 '레스테르'로 내려가 된장찌개를 앞에 놓고 오늘 일정을 챙겨봤다. 오전에는 주민들로 구성된 합창단 연습이 예정돼 있다. 오후엔 바로 앞에 있는 건국대 평생교육센터에서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울 예정이다. 식사를 마친 후 북카페 '마실'로 향했다. 미국에 사는 딸에게 메일을 보내려면 조용한 북카페가 '딱'이다.

지하 6층에 지상 50층과 40층 2개 동인 '더 클래식 500'에는 부부 중 한 사람이 만 60세 이상이면 입주할 수 있다. 평균 나이 70세 노인 570명이 살고 있는 이곳은 시설과 서비스 면에서 일반 실버타운 분위기와는 달랐다. 집안 청소와 정리정돈,세탁까지 처리해주는 '하우스키핑' 서비스가 제공되고 식사는 레스테르에서 해결한다. 한 끼 식대는 9000원.입주자 전용 스마트키로 결제한다.

'노인의 날'(2일)을 맞아 둘러본 이곳에선 노인들의 4대 고통인 '질병,고독,역할상실,빈곤'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관리업체인 건국대 재단은 입주자 개개인에게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담 주치의와 간호사,영양사가 상주하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둔 건국대병원은 입주자들을 위한 의료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병원을 찾을 때는 전담 간호사가 동행,가이드 역할을 한다. 각 가구에는 침대 욕실 등 곳곳에 응급 콜을 설치,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의료진이 곧바로 출동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상시 건강관리를 위한 피트니스센터와 스파도 호텔급이다. 피트니스센터에는 전문 트레이너가 개인별 맞춤 트레이닝 지도를 해준다. 요가 체조 댄스 골프 등 건강관리를 위한 시설과 천연 암반수 스파를 지하 1층에 9000㎡(2700평) 규모로 나란히 배치,아래 위층을 오갈 필요가 없도록 했다.

다른 시니어타운과 가장 구별되는 것은 문화예술 관련 시설과 프로그램.차를 마시면서 독서와 인터넷을 즐기는 '북카페',명품 오디오와 비디오 시스템을 통해 영화와 공연실황을 감상할 수 있는 'AV룸',입주민 이웃들과 바둑 장기 포켓볼을 즐기는 '게임룸'등은 입주민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건물 2개 동 사이에 있는 야외 수영장은 주말에 찾아온 손주들과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이색공간이다.

각 가구(전용면적 184㎡)의 5년간 임대보증금이 8억원,기본관리비가 월 120만원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노인들에겐 부담스런 수준이다. 그럼에도 전체 442가구 중 입주율이 82%에 이른다.

강병직 더 클래식 500 대표(57)는 "입주자들의 직업은 의사 변호사 교수 예술가 등 전문직과 기업 경영자들이 대부분"이라며 "남성 거주자의 60% 정도가 아직도 경제활동을 할 정도로 역동적인 삶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중견 신발 제조업체 J사장 부부도 입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