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금융권의 정경유착과 도덕적 해이를 규탄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시작한 시위가 중산층으로까지 옮겨붙지 않을까 미국 정부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량 해고와 주택 압류가 급증하는 가운데 소득마저 감소해 중산층은 뿔이 날 대로 나 있기 때문이다. 시위 지역도 뉴욕에서 LA 보스턴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슈가 빈부 격차에 대한 불만으로 확산될 경우 예기치 못한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월가 시위가 2주째 지속된 지난달 30일 시위대 규모는 2000여명으로 불어났다.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구호 아래 시민단체들이 주도한 이날 시위에는 젊은 실업자들이 주로 참여했다. 시위대는 뉴욕시 브루클린 다리를 점거,교통방해 혐의 등으로 700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출신으로 시위에 참가한 알렉산더 홈즈는 "10명 가운데 한 명이 실업 상태"라며 쌓인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 9월 미국의 실업률은 9.1%로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5%대 실업률에 비하면 두 배가량 높아진 것이다.

지난달 17일 뉴욕 맨해튼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주코티공원에서 시작된 이 시위는 당초 금융위기를 불러온 월가의 탐욕과 금융당국의 무능을 비판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온라인 잡지인 애드버스터가 아랍의 봄을 본떠 제안했다. 시위가 2주 연속 이어지면서 이슈는 실업난과 환경 교육 마약 등 다양한 주제로 확산되는 동시에 누적된 불만을 표출하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뉴욕 주코티공원의 시위 참가자들은 매일 두 차례 열리는 집회에서 발언권을 얻어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달 27일엔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주연으로 연기한 여자배우 수잔 서랜던이 참석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시작된 시위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날 로스앤젤레스와 보스턴에서도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대규모 직원 해고를 기폭제로 동조 시위가 발생했다. 특히 보스턴에서는 시위 과정에서 24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자산기준으로 미국 내 최대 은행인 BoA는 최근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직원 3만명을 해고했다. 이를 통해 2014년까지 연간 지출을 50억달러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BoA는 또 고객들이 자사의 직불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5달러의 수수료도 부과키로 해 공분을 사고 있다. 다른 은행들도 조만간 직불카드 수수료 부과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JP모건체이스와 웰스파고도 한 달에 3달러의 수수료를 물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뜩이나 소비자들은 항공 운임에다 호텔 인터넷 사용료,ATM(현금자동입출금기) 이용료 등 온갖 수수료에 시달리고 있던 터였다. 워싱턴에 살고 있는 엘리자베스 로메로는 "영세 중소업자를 돕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결국은 힘 없는 소비자들이 최종 피해를 덮어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중산층의 소득은 감소하는 반면 은행들로부터 당하는 주택 관련 소송은 급증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지난 8월 소득은 2009년 10월 이후 첫 감소세를 보였다. 돈 쓸 곳(소비)은 0.2% 증가했지만 소득이 0.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경기 침체는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2007년 이후 주택 소유주들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갚지 못해 은행에 압류당한 주택은 모두 450만가구에 달한다. 은행들은 주택 가격 하락으로 압류주택의 처분가격이 대출금을 훨씬 밑돌자 주택 소유주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