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大 졸업했지만 남은 건 4만弗 빚더미"
2일 오후 7시(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근처의 리버티스퀘어.전날 내린 비로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백명의 시위대가'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 아래 총회를 열고 있었다. 시위대는 3주째 매일 하루에 두 차례씩 이런 집회를 열고 있다. 롱아일랜드에서 왔다는 트로이 팔머 씨는 "우리는 99%의 가난한 미국인들을 대신해 탐욕스럽고 부패한 1%의 부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고 말했다. 시위 현장 곳곳에는 '구제할 대상은 금융회사가 아니라 학자금' '월스트리트와 정책 결정자들 때문에 나와 내 딸이 가난해졌다'는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한 시위 참가자는 "일류 대학을 졸업했지만 학자금 대출로 4만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우리 어머니도 작년에 일자리를 잃었다" 고 말했다.

'99%'는 시위대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정체성이다. 시위대 사이에 인기 블로그로 떠오른 '우리는 99%다(We Are the 99 percent)'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사진과 함께 자신의 사연을 올리고 있다.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는 인터넷의 파급력을 등에 업고 보스턴,프로비던스 등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올해 초 벌어진 중동의 민주화 열풍 '아랍의 봄'이 민주주의의 중심지 미국에 상륙한 건 단연 악화된 경제 사정 때문이다.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은 9.1%에 달한다. 구직자 열 명 중 한 명은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년 실업은 더 심각하다. 아메리칸커뮤니티서베이(ACS)가 지난달 발표한 16~29세 청년 고용률은 55.3%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월스트리트는 경제 사정 악화에 따른 젊은이들의 분노가 자신들을 향하는 것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모건스탠리의 한 직원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강화된 규제 때문에 은행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도드-프랭크법 때문에 자기자본거래나 차입투자가 불가능해지면서 은행들의 수익력이 크게 줄었고 그 결과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 경제 회생이 요원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월가의 고위 임원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액 보너스 잔치를 벌인 것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월가의 시각은 다르다. 골드만삭스의 한 직원은 "과거에 현금으로 받던 보너스를 지금은 주식으로만 받을 수 있는 데다 5년간 처분할 수도 없게 제한해 고급 인재들이 월스트리트를 떠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회사와 부자들을 나쁜 집단으로 규정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이 젊은이들의 시위로,다시 규제 강화로 이어져 경제 사정이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