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갑' 건축심의위원, "취지 알겠지만…" 심의보류에 비용 '눈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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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복합에 무빙워크?
"일반인 출입도 싫어하는데 누가 분양 받겠냐" 업체 당혹…전문가 취향따라 결과 제각각
심의위원 한마디에…
한 명이라도 지적하면 '보류', 언제든 로비로 이어질 수도…사전 자문·토론 도입해야
"일반인 출입도 싫어하는데 누가 분양 받겠냐" 업체 당혹…전문가 취향따라 결과 제각각
심의위원 한마디에…
한 명이라도 지적하면 '보류', 언제든 로비로 이어질 수도…사전 자문·토론 도입해야
박 부장은 "입주자로선 일반인들의 건물통행 자체도 반대할 텐데 무빙워크까지 만들면 누가 분양받겠느냐"며 "심의위원 지적에 따라 상식과 합리가 부족한 심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반발했다.
◆심의위원은 '슈퍼갑'
건설업계는 건축심의위원들을 '갑 중의 갑'으로 부른다. 심의위원 말 한마디가 심의 결과를 결정하는 까닭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두세 번 정도 보류되면 수십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며 "이 때문에 비공개인 위원 명단을 비밀스럽게 파악해 평상시에도 관리한다"고 말했다.
건축위원회는 담당 공무원과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건축심의에서 평면,배치,외관 디자인 등을 자문받고 전문가들의 창의성을 반영하자는 취지다.
서울시에선 건축위원회 소속으로 95명의 심의위원들이 활동 중이다. 회의 때마다 23명에게 통보하고 이 중 12명이 참석하면 성원이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12명이 무작위로 뽑혀 심의위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토론을 거쳐 심의 결과를 내기 때문에 특정인의 입김이 작용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건축위원회 위원을 지낸 전문가는 "자율적으로 토론하는 분위기가 아니다"며 "한마디라도 지적이 나오면 보류,또는 조건부보고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에 대한 심의가 까다로워지면서 '조잡하다' '왜색이 짙다''품위가 없다' 등 주관적인 내용들이 심의 결과에 반영된다"고 덧붙였다.
◆시간은 짧고 권한은 많고
합리적인 심의 결과가 나오려면 위원들이 심의 안건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에게 심의 순서를 뒤로 옮겨달라고 부탁한다"며 "두세 시간에 7~8건을 심의하다 보면 뒤쪽 안건은 심의위원들이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도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충분한 심의 시간을 갖지 못해 건축가들의 창의성을 살리지 못하고 심의가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며 "사전 자문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적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도 필요하다. 허영 전 서울시 주택국장은 "사전검토와 건축주,설계자와의 토론 등을 거쳐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며 "건물의 규모,형태 등 공감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개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 보완 시급
사업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심의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건축설계사무소 대표는 "사업 막바지 단계에 층수를 낮추거나 평면을 바꾸면 사업에 타격을 준다"며 "사업 초기에는 사업성 관련 내용을 심의하고 디자인 부분은 나중에 평가하면 비용절감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서울시 건축심의 기준은 일반건축물과 공동주택으로 나뉘는데 주상복합아파트는 판단 근거가 없어 심의 결과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건축가는 "환경 전문가가 건물 디자인을 지적하는 등 심의위원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위원들의 지적을 전문영역으로 특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