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복지패러다임, 생산형으로 바꿔라
며칠 전 주요 언론의 사회면을 장식했던 교통사고로 사망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슴 아파했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5㎡(약1.5평)짜리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 기거하면서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 번 돈 70만원과 술,담배까지 끊어 절약한 돈으로 불우아동들을 돕던 54세 사내의 죽음은 장례절차마저 순조롭지 않았다. 미혼모의 아이로 7세에 고아원에 버려져 혈혈단신 이 세상을 살아왔던 터라 장례를 주관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의 평소 선행이 알려지면서 그가 후원하던 사회복지시설 측이 장의를 주관하고,영부인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아 장례는 치르게 됐지만,올 때나 갈 때나 너무나 서러울 뻔 했던 고(故) 김우수씨.힘든 삶 속에서도 베풀며 살았던 그의 면면에 감동받은 한편으로 미안하고 마음이 아픈 건 의지할 사람없이 살면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이 사회에서 힘이 돼줄 제도적 장치가 너무 미비하다는 것이다. 그의 선행에만 초점을 맞추며 그가 살아왔고,살아내야 했던 이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인식과 대안 모색이 결여된 언론들의 편향적 보도는 고인에 대한 조사(弔辭)로는 적절하지 않다.

그는 매월 20만원의 연금보험과 12만원짜리 종신보험으로 노년을 스스로 대비했다. 70만원의 수입 중에서 말이다. 내년 예산안 중 복지 예산이 총 92조원이고,여기에 교육예산 45조원을 보태면 사람을 살리고,키우는 돈이 한 해 137조원이나 된다. 이 예산 중에 임기응변적 성격의 소비형 복지가 아닌 장기적인 자산형 복지로 사람들의 장래 불안을 덜어주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생산형 복지 재원은 얼마나 될까?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싱가포르가 2001년부터 시행 중인 자산형 복지는 시사하는 바 크다. 싱가포르의 경우 아이가 태어나면 일정한 목돈을 고유계정으로 적립해 뒀다가 교육비용 등 특정한 용도로 쓰고 남은 금액은 은퇴까지 국가기금으로 노후 자금으로 지급해 주도록 하고 있다. 10~20년을 넘어 50~60년 후까지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은 지금 당장 전면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우리의 현실과 대비된다. 싱가포르와 유사한 자산형 복지의 실험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시도된 바 있고,비록 입법까지는 안됐지만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몇몇 미국의 주에서도 법안이 제출된 바 있다.

사회적 공동체 내에서 그 출생아에게 고유한 인생의 종자돈을 줌으로써 자활의 기반을 닦아줘 경제적 활력의 토대와 세대 간 통합의 길을 열어주자는 생각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이론가였던 토머스 페인에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경우 신생아 한 명에게 1000만원을 배정해 연 6%의 복리로 운용할 경우 24세에는 4000만원,36세에는 8000만원 정도가 되고,60세에 달할 때면 3억2000만원가량이 된다고 한다. 국가에서 배정하는 금액에 부모 등이 매칭할 경우 그 금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연간 신생아를 45만명 정도 잡으면 약 4조5000억원이 소요되지만,이 돈이 국가펀드로 운용되면 재정적 압박도 줄이고 금융산업에도 활력을 제공할 수 있다. 미래세대의 짐을 덜어 세대 간 통합을 촉진할 수도 있다. 지금의 복지 및 교육예산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면 추가 부담 없이도 재원 조달이 가능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건 배고픈 게 아니라 꿈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의 대상엔 미래세대도 포함돼야 마땅하다. 당장의 서울시장 선거,내년의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우리 사회의 복지 논쟁이 임시처방전 성격을 벗어나지 못할까 우려된다. 소비적 복지의 모르핀 주사에 몰입하는 한,서럽게 태어나 어렵게 살다가 외롭게 죽어가는 이 땅의 김우수 씨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맹자는 오랜 병에 3년 묵은 쑥을 쓰려면,지금이라도 쑥을 묵혀 놓아야지,그렇지 않으면 평생 가도 약은 얻지 못한다고 했다(苟爲不畜 終身不得).복지 패러다임을 바꿔 멀리 보는 생산적 복지에 눈을 돌려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