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재정위기와 선진국 불황 여파로 미국과 유럽 장수 기업들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은행들은 2008년 금융위기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재정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마불사의 미몽에 취해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친 기업들은 100년 이상 된 역사에도 불구,핵심 사업부를 매각하거나 법정관리로 회생을 도모해야 할 형편에 놓였다.

◆벨기에 덱시아도 휘청

저력의 '100년 기업들' 맥없이 휘청
10월 첫 거래일인 3일(현지시간) 미국 금융주들은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며 급락했다. 초점은 1935년 설립된 모건스탠리였다. 부도 가능성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유럽 은행들보다 높은 수준으로 치솟으며 주가는 7.7% 하락했다. 그리스에 많이 물린 프랑스 은행과의 거래가 많다는 게 이유였다. 높은 단기자금 의존도,구조조정에 대한 소극적 태도 등도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는 이유라는 지적이다.

모건스탠리와 함께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는 곳은 100년 역사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부실 우려가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BoA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며 지원 사격에 나섰지만 시장은 이를 외면했다. 골드만삭스는 3분기 적자 전환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주가가 4% 이상 내려앉았다. 1999년 상장한 골드만삭스가 분기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08년 4분기 한 번밖에 없었다.

유럽에서는 1860년 설립된 벨기에 신용조합을 모태로 탄생한 덱시아가 집중 타격을 받았다. 벨기에와 프랑스가 합작한 이 은행은 문제가 되는 유럽 국가의 채권을 200억유로어치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디스는 덱시아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주가는 10% 이상 하락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다른 금융회사의 부실을 떠안은 데다 공적자금을 받은 뒤에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게 금융회사들을 벼랑으로 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90년 된 아메리칸항공 부도설

이날 뉴욕증시에서 또 하나의 관심은 1920년 설립된 아메리칸항공의 모회사 AMR의 법정관리 신청설이었다. 아메리칸항공은 미국 대형 항공사 가운데 유일하게 지난 10년간 파산보호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이 더했다. 법정관리 신청설이 나돌자 주가는 하루 새 33.1%나 폭락했다. AMR은 최근 두 달 새 항공기 조종사 200여명을 줄였지만 여전히 구조조정이 필요한 회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2분기 델타 등 경쟁사들이 흑자를 냈지만 AMR은 2억86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장수 기업 중 시련을 겪고 있는 대표적 유럽 회사는 사브다. 1937년 설립된 사브는 스웨덴 법원이 거부해 겨우 파산을 면했지만 중국 회사가 인수하기를 기다리는 처지다. 146년 역사의 핀란드 노키아도 시련을 겪고 있다. 애플에 휴대폰 왕좌를 내준 후 7개월 새 주가가 반토막났고 최근 뉴스는 공장 폐쇄,감원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