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 달러 환율이 4일 장중 한때 1200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정부의 '고강도 시장 개입'은 눈에 띄지 않았다. 공식적인 구두 개입도 없었다. 환율이 1190원대로 내려선 것은 순전히 시장 수급에 따른 것이었다는 게 외환딜러들의 설명이다.

외환딜러들은 "정부의 '1200원 사수' 의지가 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대외 불안이 심화되면 환율은 언제든 1200원 선을 넘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쉽게 무너진 1200원

이날 서울 외환시장은 개장 전부터 환율 상승 압력이 거셌다. 전날(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차액결제선물환(NDF) 환율이 장중 1200원을 뚫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다시 커지면서 대외 여건도 불안해졌다.

외환시장이 열리자마자 환율은 1200원을 찍었다. 시장은 잠시 정부의 눈치를 봤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환율이 1200원에 육박하자 "외환시장의 쏠림이 과도하다"며 구두 개입에 나선 데 이어 곧바로 35억달러를 풀어 환율을 1166원까지 끌어내렸다.

하지만 이날 정부는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환율은 곧바로 1208원20전까지 뛰어올랐다. 한 외환딜러는 "정부 개입은 거의 없었고,있더라도 미세 조정 수준의 소규모 개입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오후 들어서다. 장중 100포인트 넘게 빠졌던 코스피지수가 60포인트대로 낙폭을 축소하면서 환율 상승 심리에 제동이 걸렸다. 수출업체들의 네고 물량(수출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는 것)이 나오면서 환율이 1200원 밑으로 떨어졌다. 김진주 외환은행 계장은 "환율이 1200원을 넘자 수출업체들이 지난달 말 다 처리하지 못한 네고 물량을 대거 쏟아냈다"고 전했다.

외국인 채권 매수 자금이 유입된 것도 환율 상승폭 둔화에 영향을 줬다. 외국인은 최근 국내 채권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채권 매수자금 결제를 위해서는 달러를 원화로 바꿔야 한다.

◆패닉 없을 것 vs 1400원 넘을 수도

환율이 시장 수급에 따라 1190원대로 내려왔지만 외환시장의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외환딜러들은 그동안 심리적 저항선으로 간주된 1200원 선이 쉽게 뚫렸다는 점에서 향후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술적으로든,심리적으로든 1200원 선은 더 이상 저항선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경제의 방어막 역할을 하는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최근 급격히 줄어든 것도 향후 환율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그리스 디폴트가 현실화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이 없는 상태에서 외국 자본이 대거 한국을 빠져나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타나면 환율이 143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성순 기업은행 차장은 "그리스 디폴트 우려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환율 방향성이 결정될 것"이라며 "외환시장 분위기가 패닉(심리적 공황)까지 몰릴 정도는 아니지만 아직은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