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당장 추가 양적완화를 실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버냉키 의장은 4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경제 회복력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약해 쓰러지기 직전"이라며 "회복을 촉진하기 위해 적절한 추가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가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대책도 책상 위에서 치우지 않고 있다"면서도 "추가(3차) 양적완화와 같은 조치를 당장 취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버냉키는 단기 국채 4000억달러어치를 팔아 장기 국채를 사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로 장기 국채 금리가 0.20%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통화정책은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며 "경기 회복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모든 정책 입안자들의 공동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행정부,의회가 Fed와 함께 경기 부양에 힘을 합쳐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중국 정부의 인위적인 위안화 가치 저평가 정책도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 정부가 미국 상원이 환율조작 보복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을 비난한 뒤 내놓은 발언이었다. 그는 "중국 정부의 통화정책이 세계 경제의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운을 떼고 "일정 부분 경제 회복을 저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미국 경제가 더블딥(짧은 경기 회복 후 재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앤드루 틸턴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내년 초 침체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그는 "유로존의 재정위기 탓에 금융시장 여건이 악화되고 유럽지역에 대한 수출도 감소하는 등 미국 경제에 복합적인 충격이 가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도 미국을 포함한 선진 경제권이 1년 이내에 침체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로치는 이날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한 만찬 회의에 참석,"주요 선진국들은 침체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으며 향후 12개월 이내에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만간 프랑스와 독일이 이미 침체에 빠진 나머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회원국처럼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미국도 곧 침체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치는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이번 세계 경제 침체의 깊이가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는 깊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