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RCA 학생 60%는 공학ㆍ경영학도
지난 3일 찾은 영국 런던 사우스켄싱턴 지역의 영국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디자인스쿨.이곳은 '산업 디자인의 거장'으로 꼽히는 제임스 다이슨,'아이팟'으로 쓰러져가던 애플을 다시 일으킨 조나단 아이브,크리스찬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 등 걸출한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명문대다.

이 학교의 성공요인은 뭘까. 강의실부터 가봤다. 강의실의 특징은 두 가지였다. 먼저 교수가 없었다. 10여명의 학생들이 교수 없이 삼삼오오 모여 기업에서 따온 프로젝트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교수가 강의하고 학생은 받아적는 풍경은 1년에 한두 번 정도.입학 첫해에는 아예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거나 해외 연수를 통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정해진 커리큘럼이나 필기시험도 없다. "이 강의실에서는 오직 토론과 경험,그리고 끊임없는 성공과 실패가 있을 뿐"이라는 게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의 얘기다.

두 번째는 학생들의 전공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혁신디자인을 가르치는 마일즈 패닝턴 교수는 "자유로운 협업,과목 간 벽이 없는 융합 환경이 RCA의 핵심 유전자(DNA)"라고 설명했다. 협업과 융합에 교육의 중점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디자인 전공생보다 공학 자연과학 등 타 학부생을 더 많이 뽑는다. 전공을 묻기 위해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40%만이 디자인 · 예술 전공이라고 답했다. 30%는 공학,나머지 30%는 물리학,수학,경영,통계 전공이다. 패닝턴 교수는 "다양한 전공과 문화,나이,배경이 모여 창의적인 시각이 섞이고 새로운 경험을 주는 디자인이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디자인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런던에 있는 엔진서비스디자인사는 벤츠,노키아,버진애틀랜틱항공 등 글로벌 업체는 물론 2007년부터는 삼성전자의 미래 디자인 컨설팅을 제공해왔다.

17명의 직원을 둔 이 회사는 디자인,경영,건축,공학,인문학 등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직원을 뽑아쓰고 있다. 설립자 조 히피 씨는 "'디자이너'가 전 경영 과정을 조율하며 이끌어 가장 최적화된 대안을 도출해낸다"며 "경계 없는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선진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 핵심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한국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얘기다. 지난해 한국디자인진흥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회사 중 디자인 혁신을 위해 다양한 전공의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24.5%에 불과했다.

런던=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