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가을로의 여정(旅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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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훈 < 이노패스인터내셔널 대표이사 jhhan@innopathintl.com >
문득 일찍 잠에서 깨어 아직 어두운 거리로 나가 봤다. 새벽 미사를 끝내고 집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정겹다. 매일 새벽 그들은 이 거리를 오갔을 터인데 유독 오늘 그들이 정겨운 이유를 생각해 봤다. 아!가을이 깊어졌구나. 그들은 이 새벽에 무엇을 기도 했을까. 이 칙칙한 삶을 한번쯤 되물려 달라고? 치열했던 사랑의 기억만 남기고 떠나버린 연인을 이제는 용서했을까?
사람들은 이 계절이면 저마다 마음속으로부터 여행을 준비한다. 그 봄,아우성치듯 벚꽃으로 충만하던 여의도 봄꽃축제를 떠나 나무 한 그루 외로이 우뚝 선 가을 벌판을 꿈꾼다. 어떤 이는 지난 여름 미시령 넘어 작은 암자에 열병처럼 가득하던 붉은 수국을 모조리 품에 끌어안고 그대로 바다로 가버리고픈 생각에 진저리를 치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결코 달이 뜨지 않을 법한 모래사막 위 실크로드 천산북로(天山北路)에 기꺼이 고행의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그렇게 가을이면 신열(身熱)은 때이른 독감처럼 이 나이에도 찾아든다. 온몸이 신열에 들뜰 때면 우리는 집을 떠났고,그게 우리의 삶이기도 했다. 두물머리 마른 강가의 갈대숲에 오래 서 있었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찬란했던 젊음을 기다리듯 서럽게 무리져 있는 갈대숲을 보며 흩뿌린 회한의 눈물은 또 얼마였는지….때로는 설악산 공룡능선에 서 있었다. 단풍 잎새 사이로 축복처럼 뿌려지던 섬광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이름 모를 빨간 열매를 더욱 애처롭게 비췄다. 때로는 화진포 해변 방파제 위에 서 있었다. 가을 갯바위에 마구 부딪쳐 치미는 포말이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때는 그냥 이대로 둬달라'며 자학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을이면 이렇게 돌아갈 줄 모르고 오래오래 기다리고 서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오랜 세월 삶에 지칠 때마다 하릴없이 홍대거리를 찾아들면 새뮤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거기 있었다. 어두운 조명의 무대에는 가을을 닮은 모습의 나목(裸木) 한 그루와 불분명한 시간과 공간 속 두 남자주인공이 있었다. 그들은 '고도'라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왜 고도를 기다리는지,고도는 누구인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듣는 말은 '오늘은 못 오고 내일 오신답니다'뿐이었다. 많은 이들이 어리둥절한 부조리극을 하품을 참아가며 견디고 있었다. 대체 우리네 삶의 무엇이 우리를 이리로 이끌었을까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기다려온 고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답은 아직도 모른다. 다른 사람은 빤히 알고 있지만 내게는 차마 말하지 않는 나의 어설프고 치기 어린 자화상이지 싶기는 하다.
가을이 깊어만 간다. 방랑자처럼 여행을 떠날 것을 준비하면서도 우리는 어쩌지 못해 흘깃 자신의 일상을 곁눈질한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팍팍한 삶 속에서 방황하고 분노하고 갈등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살아 있다는 벅찬 사실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저 멀리 사하촌(寺下村)에도 곧 첫눈이 내리리라.
사람들은 이 계절이면 저마다 마음속으로부터 여행을 준비한다. 그 봄,아우성치듯 벚꽃으로 충만하던 여의도 봄꽃축제를 떠나 나무 한 그루 외로이 우뚝 선 가을 벌판을 꿈꾼다. 어떤 이는 지난 여름 미시령 넘어 작은 암자에 열병처럼 가득하던 붉은 수국을 모조리 품에 끌어안고 그대로 바다로 가버리고픈 생각에 진저리를 치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결코 달이 뜨지 않을 법한 모래사막 위 실크로드 천산북로(天山北路)에 기꺼이 고행의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그렇게 가을이면 신열(身熱)은 때이른 독감처럼 이 나이에도 찾아든다. 온몸이 신열에 들뜰 때면 우리는 집을 떠났고,그게 우리의 삶이기도 했다. 두물머리 마른 강가의 갈대숲에 오래 서 있었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찬란했던 젊음을 기다리듯 서럽게 무리져 있는 갈대숲을 보며 흩뿌린 회한의 눈물은 또 얼마였는지….때로는 설악산 공룡능선에 서 있었다. 단풍 잎새 사이로 축복처럼 뿌려지던 섬광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이름 모를 빨간 열매를 더욱 애처롭게 비췄다. 때로는 화진포 해변 방파제 위에 서 있었다. 가을 갯바위에 마구 부딪쳐 치미는 포말이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때는 그냥 이대로 둬달라'며 자학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을이면 이렇게 돌아갈 줄 모르고 오래오래 기다리고 서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오랜 세월 삶에 지칠 때마다 하릴없이 홍대거리를 찾아들면 새뮤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거기 있었다. 어두운 조명의 무대에는 가을을 닮은 모습의 나목(裸木) 한 그루와 불분명한 시간과 공간 속 두 남자주인공이 있었다. 그들은 '고도'라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왜 고도를 기다리는지,고도는 누구인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듣는 말은 '오늘은 못 오고 내일 오신답니다'뿐이었다. 많은 이들이 어리둥절한 부조리극을 하품을 참아가며 견디고 있었다. 대체 우리네 삶의 무엇이 우리를 이리로 이끌었을까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기다려온 고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답은 아직도 모른다. 다른 사람은 빤히 알고 있지만 내게는 차마 말하지 않는 나의 어설프고 치기 어린 자화상이지 싶기는 하다.
가을이 깊어만 간다. 방랑자처럼 여행을 떠날 것을 준비하면서도 우리는 어쩌지 못해 흘깃 자신의 일상을 곁눈질한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팍팍한 삶 속에서 방황하고 분노하고 갈등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살아 있다는 벅찬 사실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저 멀리 사하촌(寺下村)에도 곧 첫눈이 내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