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5일 오후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은 당초 일정보다 20분가량 늦은 오후 6시35분께 끝났다. 행사 시작이 다소 늦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축사가 길어진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축사는 7분으로 잡혀 있었는데 이 대통령은 20분 넘는 시간을 썼다.

이 대통령은 "축하하는 자리에 와서 주문이 많아 미안하다"면서도 원고에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축사라기보다 전경련과 대기업을 향한 쓴소리와 주문이 많았다는 게 참석자들의 반응이었다.

◆"전경련이 알아서 변화해야"

이 대통령은 축사에서 시장의 진화와 기업의 자발적인 동참,공생발전,혁신과 기업가정신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에는 전경련이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위기 때마다 전경련 중심으로 위기를 탈출했다"고 운을 뗀 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가 전경련을 보는 눈이 과거와 많이 달라져 전경련이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로 오인받을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전경련이 고민해야 할 가장 큰 문제로 빈부 격차와 일자리 문제를 꼽았다. 그는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문제 중심에 일자리 문제가 있다"며 "어렵더라도 일자리를 줄이지 말고 고졸 출신과 서민들을 위해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해달라"고 주문했다.

고졸 인력 채용과 양성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미 많은 기업들이 고등학교 출신들을 뽑고 있지만 그냥 뽑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고졸을 뽑아도 4년 정도 근무하면 대학 4년 졸업하고 들어온 사람보다 더 대우가 나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공생발전에 힘써줄 것도 요청했다. 그는 "모든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대 · 중소기업 간 협력에 대해 얘기했고 전경련도 화답했지만 문화로 정착되지는 못했다"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해 시혜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도움을 줘야 서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강권하고 법과 제도로 강압적으로 하는 것은 성과를 낼 수 없다"며 "변화에 역류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로 보고 기업의 문화로 정착시켜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기보다 시장의 진화에 전경련이 호응해달라"며 자발적 변화를 주문했다. 이어 "자유민주주와 시장경제는 흔들 수 없는 원리"라며 "시장이 알아서 진화해야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경련,"국민과 소통 강화에 힘쓸 것"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함께 발전하고 성장의 과실이 구석구석 다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지난 50년간 힘겨운 길을 달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했지만,효율 없이는 이길 수 없는 경쟁 속에서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배려도 부족했던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우리 경제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제계는 이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들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 신뢰와 사랑을 받는 경제계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기업들이 제대로 성장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라 경제를 견인할 수 있도록 변함없는 성원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전경련은 이날 국민보고대회에서 공개한 한국 경제 비전 보고서에서 2030년 국내총생산(GDP) 5조달러,1인당 국민소득 10만달러,세계 10대 경제강국 달성과 함께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전경련은 노동과 자본의 성장기여도를 높이고 생산성을 극대화해 매년 5.2%의 실질성장을 이루면 GDP와 국민소득을 현재의 5배로 키우고 경제규모 순위는 현재 15위에서 10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