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터만 스탠퍼드대 공대 교수는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1940년대 후반 혼자 힘으로 스탠퍼드대 공대를 육성했다. 스탠퍼드 산업단지를 만든 것도 그였다. 산업의 불모지를 실리콘밸리의 터전으로 만들었다. 그가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더 중요한 이유는 실리콘밸리의 핵심 가치인 창업정신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는 유능한 인재들이 당시 산업의 중심지였던 보스턴 등 동부로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뛰어난 제자들에게 창업을 독려했다. 대표적인 제자는 실리콘밸리 1호 벤처기업인 휴렛팩커드(HP)를 만든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였다.그들이 창업한 창고는 실리콘밸리의 발상지로 지정됐다.

그의 창업정신은 이후 애플, 구글 등으로 이어졌다. 창업정신으로 무장하고 창고에서 회사를 세워 세계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는 또 하나의 인물이 최근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포스트 스티브 잡스 시대의 가장 강력한 대안(월스트리트저널)’, ‘괴짜이자 천재(포브스)’ 등으로 불리는 미국 인터넷 쇼핑사이트 아마존닷컴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47·사진)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창업하라

1980년대 말 프린스턴대 졸업을 앞두고 있던 청년 베조스는 내로라하는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텍사스 지역 영재학교 시절부터 그의 뛰어난 재능을 알고 있던 회사들이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신생 벤처기업 피텔이라는 회사였다. 그는 여기서 시스템 구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던 회사생활로 몇 개의 금융회사를 거쳐 헤지펀드 ‘디이 쇼(DE Shaw)’에 자리를 잡았다. 1년 만에 수석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의 또 다른 미션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인터넷 분야에서 유망 사업을 찾는 것이었다. 어느날 베조스는 창업자 데이비드 쇼에게 인터넷으로 도서 판매를 하자고 제안했다. 1994년 당시 인터넷 이용 인구가 1년 만에 24배 늘었다는 기사를 보고나서였다. 다른 물건과 달리 책은 인터넷 판매에 부담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베조스의 제안에 대한 경영진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베조스는 즉시 회사를 그만뒀다. 대학 동기들에게 연락해 200만달러를 빌렸다. 모두 창업자금이었다. 사무실을 낼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신의 차고를 수리했다. 그리고 사상 최초의 전자상거래 업체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를 설립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여든 살이 넘어 과거를 돌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후회하지 않는 방법을 찾았고, 결론은 창업이었다”고 회고했다. 인터넷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자신을 온전히 내던져봐야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창업으로 이끈 것이다. 이후 회사 이름이 너무 길다는 지적에 따라 이름을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아마존으로 바꿨다. 베조스는 “경쟁사보다 회사가 커지길 바라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끊임없는 변신과 치밀한 계산

베조스는 창업 후 아마존의 지속적인 변신을 추구해왔다. 손 안대는 사업이 없다고 평가받을 정도다. 그러나 이 변신은 보다 큰 미래 사업을 노린 철저한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는 인터넷 책 판매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인터넷 상거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고객들이 대금을 떼여도 큰 부담이 없고, 어디서 사더라도 동일한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품이 책이었다”고 설명했다.

준비도 철저했다. 아마존 설립 시기는 1994년 7월이지만, 책은 1995년 하반기부터 판매했다. 서적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확충하고 방문자들의 편리한 쇼핑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1년을 보낸 것이다. 동시에 인터넷 판매가 유망한 품목 20가지를 선정했다. 그리고 책, CD, 비디오,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의 순서로 하나 하나 판매 품목을 확대해가는 치밀함을 보였다.

최근 아마존이 애플 아이패드에 대한 대항마로 들고 나온 ‘킨들 파이어’도 치밀한 계산의 결과다. 그는 전자상거래에서 태블릿PC로 사업을 확장하는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베조스가 택한 전략은 아마존의 전자상거래 고객들이 자사의 사이트와 기기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마존 인터넷 사이트의 인터페이스(사용자 환경)에 익숙해지면 고객들이 이와 비슷한 환경의 모바일 기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마침내 2007년 전자책 킨들을 선보였다. 이어 태블릿PC ‘킨들 파이어’ 개발로 이어졌다. 그는 지난달 28일 킨들 파이어 출시 행사장에서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를 능가하는 프레젠테이션으로 좌중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벌써 킨들 파이어는 애플 아이패드의 대항마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아마존의 끊임없는 변신은 창의적 아이디어 산물이다. 베조스는 “창의적이지 못한 이들과 함께 보내기에 인생은 지나치게 짧다”고 말할 정도로 창의성을 중시한다. 아내가 될 여자도 창의력이 풍부한 여자를 찾을 정도였다고 한다.

직원을 채용할 때는 더욱 창의성을 강조한다. 직원 면접시 때로는 ‘미국 내 주유소가 몇 개 있을까’ 등의 질문을 던진다. 몇 개인지를 추론해가는 과정에서 창의성을 찾겠다는 것이다. 애플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다 아마존으로 옮겨온 셸 카판을 첫 직원으로 뽑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베조스는 그가 컴퓨터 시스템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을 보고 채용했다. 그가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고 회사를 12번이나 옮겨 다닌 전력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유도하기 위해 누구든 상사의 의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것도 아마존만의 특징이다. 베조스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직원 중 ‘NO’라고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창의성을 중시하긴 하지만, 경쟁자의 기술을 모방해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도 개방적이다. 그는 “우리는 경쟁사를 지켜보며 그들의 서비스나 기술을 최대한 따라하는 방법으로 한층 높은 수준을 달성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창의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베조스의 생각이다. 그는 “경영자가 비행기 안에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바로 이어진다는 것은 허구”라며 “1주일에 한 번씩 임원 회의를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낸 뒤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측정할 수 있는가를 제일 먼저 묻는다.‘애플의 창의력에 구글의 숫자 중심 문화를 결합한 것이 아마존’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그의 철저한 ‘수치 중심주의’는 2003년 광고 중단에서 드러난다. 광고비를 줄여 제품 배송에 쓰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고객이 부담하는 배송 비용이 낮아지면 충성도가 높아지는 효과까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한 인터넷 기업의 광고 중단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광고 중단 결정은 철저한 조사 뒤 나온 수치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두 도시를 선정해 한 도시에서는 일정 기간 광고를 집행하고, 다른 도시에서는 광고를 중단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매출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난 뒤 광고를 중단한 것이다. 직원 채용에서도 베조스는 화이트보드에 도표를 그려 놓고 후보자들의 강점과 약점을 면밀하게 비교한다. 후보자의 자격 요건이나 능력에 약간의 의문이라도 들 경우 채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