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8시30분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오전 9시 증시가 열리기 직전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는 짤막한 메시지가 메신저를 타고 돌기 시작했다. 메시지에는 '잡스 사망 수혜주'라는 이름으로 코스닥시장 상장기업 5개가 나열돼 있었다.

국내 휴대폰업체에 스마트폰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었다.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잡스의 죽음 이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있어 이들 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실적도 좋아질 것이라는 게 '수혜'의 논리였다. 이 중 1개 종목은 개장하자마자 상한가로 치솟았다.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반사이익을 운운하고 수혜주를 찾는 증시는 어떻게 보면 비정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잡스 사망 수혜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며 아무리 돈이 오가는 증시라도 너무한 일이라고 분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도덕과 온정이 아니다. 이날 증시에서 '잡스 수혜주'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물론 스마트폰에 직 · 간접적으로 관련된 정보기술(IT) 기업 대부분 주가가 급등한 것은 시장을 움직이는 논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3월 일본 동북부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1만5000여명이 사망했을 때도 증시에서는 '대지진 수혜주'를 찾기에 바빴다.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민주화 물결이 일 때도 국내 증시에서 관심을 가진 건 '카다피 축출 수혜주'였다.

이처럼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대사건도 증시에선 한갓 '재료'에 불과할 때가 많다. 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단위로 매매가 체결되고,조 단위의 돈이 움직이는 증시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려 드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수도 있다.

잡스의 죽음으로 글로벌 IT 업계의 판도는 변화를 맞을 것이고,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수혜를 입거나 손해를 볼 것이다. 그런 변화는 도덕적 판단 이전에 일어나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대표이사가 유력 대선주자와 함께 찍은 사진만 있어도 '대선 테마주'로 분류돼 주가가 급등하는 국내 증시 현실에서 잡스 수혜주는 그나마 최소한의 경제적 · 논리적 근거는 갖고 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