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토시ㆍ아이폰ㆍ아이패드…'해적' 애플, IT생태계를 바꾸다
1984년 1월17일.미국 슈퍼볼 경기 도중 이상한 광고가 등장한다.

칙칙한 건물 내부.똑같은 표정을 한 사람들이 대형 스크린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스크린에는 '빅브러더'가 뭔가를 끊임없이 떠들고 있다. 그때 도끼를 든 한 여자가 나타나 TV 스크린을 향해 달려가 도끼를 내던진다. 빅브러더가 연설하던 스크린은 파편들을 뿌리며 폭파된다. 1984년 애플이 만든 전설적 광고다. IBM은 조지 오웰의 소설에 등장하는 '빅브러더',걸어가는 사람들은 빅브러더의 세뇌공작에 아무 생각없이 IBM PC를 쓰는 소비자들이다. 그리고 여자는 애플을,도끼는 IBM제국을 무너뜨릴 매킨토시를 상징한다. 이 광고는 스티브 잡스가 평생 걸어간 도전의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IBM을 넘어 마이크로소프트,다시 노키아와 삼성으로 향하는 진군의 스토리다.

◆"해적이 되어라"

1970년대는 IBM의 시대였다. 그러던 어느날 IBM제국에 서부의 두 젊은이가 도전장을 던졌다. "개인용 PC시대가 왔다"며 애플이 1977년 애플Ⅱ를 출시한 것.스티브 잡스는 단숨에 스타로 발돋움했다.

IBM제국은 반격에 나섰다. 1981년 개인용 IBM PC를 내놓은 것.IBM 매출은 애플의 200배였고 연구개발 금액은 100배가 넘었다. 애플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잡스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픽으로 특화된 매킨토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해군이 되지 말고 해적이 되어라"고 주문했다. "거인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안된다. 새롭고 창조적인 제품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의 말대로 매킨토시는 기존 컴퓨터와 완전히 달랐다. 텍스트 중심에서 벗어나 그래픽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매킨토시는 5만대 이상 팔리며 성공신화를 써갔다.

◆빌 게이츠와의 승부

1984년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 빌 게이츠는 애플의 매킨토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은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게이츠는 매킨토시를 벤치마킹해 1985년 첫 번째 윈도를 내놨다. 이를 본 잡스는 분노했다. "빌 게이츠가 내 아이디어를 훔쳐 성공했다"고 혹평했다. 이후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지만 모두 패했다. 그리고 1985년 매킨토시 판매 부진으로 애플에서 쫓겨났다. 반면 게이츠는 윈도 시리즈를 내놓으며 1990년대까지 강력한 제국을 구축했다.

절치부심하던 잡스는 2001년 '아이팟'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곧 이어 아이튠즈를 열어 음악 유통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다. 예상치 못한 잡스의 재기에 게이츠는 불쾌했다. 몇년 후 게이츠는 MP3 '준(Zune)'을 출시했다. 하지만 아이팟의 경쟁 상대가 되기는 역부족이었다.

아이팟은 워크맨,MP3플레이어 등 다른 휴대용 음악기기를 모두 사지로 내몰며 시장을 독식했다. 이 시장의 강자였던 소니,삼성전자,아이리버 등은 아이팟 돌풍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이츠는 5일 잡스의 사망소식을 접한 뒤 "스티브를 한없이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과의 악연

아이팟 하나로 글로벌 IT업계의 일각을 베어문 애플은 아이폰을 내놓으며 휴대폰 시장에 본격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로는 생소한 제품이었던 스마트폰을 내세웠기 때문에 휴대폰 절대강자 노키아나 삼성전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잡스가 휴대폰 시장의 패러다임을 스마트폰으로 옮겨놓으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삼성은 아이팟이나 아이폰이 잘 팔릴수록 반도체 등의 부품을 팔아 쏠쏠한 재미를 봤지만 어느 순간 휴대폰 사업부 자체가 궤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여기에 애플은 TV시장까지 기웃거리며 세계 TV시장의 맹주 삼성의 신경을 자극했다.

결국 서둘러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한 삼성은 구글과의 전면적 협력,뛰어난 하드웨어 기술,특유의 스피드 등을 앞세워 애플을 턱밑까지 추격하는 것으로 전세를 반전시켰다. 예상치 못한 삼성의 공세에 당황한 잡스는 공개적으로 삼성 제품에 독설을 퍼부으며 특허소송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5일엔 아이폰4S 출시에 맞춰 기다렸다는 듯이 유럽지역에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양측은 이제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서로를 향해 폭주를 거듭하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