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낭만주의자들은 저마다 스피노자(1632~1677)라는 유태인 출신의 네덜란드 철학자에 열광했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그랬고 극작가 레싱이 그랬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인 코울리지와 워즈워스도 친구들과의 대화를 스피노자에서 시작해 스피노자로 끝낼 정도였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같은 화가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했다. 이들은 왜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진 한 세기 전의 철학자에게 열광했던 것일까.

18세기 후반의 유럽인들 사이에는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가 팽배해 있었다. 물론 그런 움직임은 르네상스 이래 인본주의적 입장이 강화되면서 점차 확대 재생산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의 절대자에 대한 회의였지 무신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점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기독교의 신 대신 다른 신성을 찾아 나선 데서 잘 드러난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계기로 일어났던 고대 이집트 탐구 열기와 동방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심도 그런 모색 과정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전위에 섰던 인물은 독일의 유태인 철학자인 모제스 멘델스존(1729~1786)이었다. (낭만주의 음악가인 멘델스존은 그의 손자다) 그는 만물에 신이 내재해 있다고 보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공감해 이를 옹호하는 글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새로운 신성을 갈구하던 낭만주의자들에게 하나의 계시처럼 받아들여졌다. 괴테,헤르더,셸링,자코비,헤겔 같은 독일 문단과 사상계의 주도적 인물들이 하나같이 그를 통해 스피노자의 사상과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스피노자는 "모든 것이 신이다"고 주장했는데 그에게 신은 기독교의 인격신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였다. 이것은 자연을 구성하는 만물은 신의 형태를 빌린 것으로 각각의 물체에는 신성이 내재해 있다고 본 것인데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도의 입장에서 볼 때는 무신론이나 다름없었고 유물론에 바탕을 둔 사상이었다.

이런 발칙한 생각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으리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유태교에서 파문당했을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를 처단해야 한다는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힌 괴한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외로운 철학자의 혁신적 사상은 한 세기를 지나고 나서 마침내 빛을 보게 된다. 괴테 역시 자신의 색채이론을 전개하는 가운데 자연에는 신성이 내재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같은 화가들도 이러한 범신론적 입장에 공감,자연에 내재한 숭고한 아름다움을 묘사함으로써 신의 숨결을 드러내고자 했다.

건축가 겸 화가인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1781~1841)도 그런 시대정신에 공감해 자연에 내재한 신성을 화폭에 표현하고자 했다. 평소 그림과 건축을 통해 나름의 이상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던 그는 고대 이집트 문화에도 관심을 가져 이집트를 무대로 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무대 세팅을 고안하기도 했다.

'바위산의 관문'은 자연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싱켈의 대표작이다. 누구든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은 화폭에 구현된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동굴 같은 천연 구조물 사이로 푸른 하늘과 험준한 산들이 저만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침 태양은 금빛 여운만을 남긴 채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고 있어 화면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비교적 산세가 완만한 데 비해 동굴 부근의 산들은 상당히 가팔라서 이곳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수고를 감수해야만 할 것 같다. 동굴 앞 진입로는 좁은 데다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할 듯 하다. 그만큼 이곳은 외부세계와 단절된 비밀스런 장소로 설정돼 있다.

신이 돌로 탑을 쌓은 듯한 이 거대한 동굴은 '바위산의 관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은둔자의 수도원으로 향하는 입구인지도 모른다. 동굴 안쪽에 수도원이 있으리라는 추측은 동굴 오른쪽에 뚫린 구멍에 걸려있는 종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실제 자연을 모델로 해서 그려진 것이 아니다. 자연의 숭고하고 신비한 아름다움을 표현함으로써 만물에 깃든 신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화가의 낭만적 상상의 산물이다. 그 신비한 무대를 밟고 있는 말을 탄 일행은 신의 존재를 찾아나선 싱켈 자신일지도 모른다. 화가는 과연 자연에 내재한 신의 숨결을 느꼈을까.


◆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 서곡'

음악에서 자연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미술과 마찬가지로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의 '핑갈의 동굴 서곡'은 그런 작품 중 하나로 1929년 여름 스코틀랜드 서북부지역을 여행하던 중 헤브리디즈제도 핑갈의 동굴을 방문하고서 느낀 인상을 담은 것이다. 전설상 왕인 핑갈의 이름에서 명칭을 따온 이 동굴은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기괴한 모습으로 인해 신의 조화가 깃든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곳이다.

원래 작품명은 '헤브리디즈 서곡'이었는데 대중에겐 '핑갈의 동굴 서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작품명에 서곡이라는 표현이 포함돼 있어 특정 작품의 서곡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연주회 초반에 연주하기 위해 작곡한 독립 작품이다. 낭만주의 음악가들은 이런 형식으로 즐겨 작곡했다.

비올라,첼로,파곳으로 시작하는 이 곡의 중심 테마는 헤브리디즈제도로 항해하면서 바라본 바다의 풍광과 동굴의 경이로운 느낌을 서정적인 멜로디에 실었다. 선율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바그너는 그를 '빼어난 풍경화가'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자연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본 할아버지 모제스 멘델스존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일까. 그의 음악을 통한 자연예찬은 어떤 문학적 수사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이 담겨 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ㆍ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