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글로벌화한 온라인 시대에서는 주가를 비롯한 각종 금융변수가 심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주가 결정에 심리요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론이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이다. 한마디로 투자자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주가는 올라가고,반대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주가는 떨어진다는 것이 이 가설의 골자다. 수많은 주가예측기법 가운데 최근 월가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다.

심리적 요인을 더 증폭시키는 것이 네트워킹 효과다. 이제 모든 경제활동은 각종 네트워크에 의해 빈틈이 없을 정도로 연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사건이 터져 나오면 그 나라 전체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이른바 정보시차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의학에서 환자의 심리상태에 따라 완치 여부가 결정된다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와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노시보 효과는 아무리 좋은 약을 먹더라도 환자가 그 효과를 의심하면 치료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반면 플라시보 효과는 약을 주지 않더라도 환자가 낫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완치될 수 있음을 뜻한다.

두 효과를 우리 경제와 증시에 적용해 보면 노시보 효과는 건실한 한국 경제를 믿지 못함에 따라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경우다. 요즘 나돌고 있는 10월 위기설이 대표적인 예다. 3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 매달마다 위기설이 제기되면서 우리 증시가 대혼란에 빠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로 보면 '10월 위기설'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위기와 리먼 사태 때에 비해 각각 10분의 1,절반 이하다. 그만큼 위기 관련 지표가 개선됐다. 한국이 속한 신흥국 그룹 중에서도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런 위기설이 우리 내부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리먼 사태 때에도 한국 내부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나왔던 위기설이 오히려 국제금융시장에서 화두가 됐을 정도다. 근거없는 위기설에 따라 주가와 원화가치가 폭락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제를 건실하게 만드는 데 애를 쓴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10월 위기설'만 해도 그렇다. 노무라증권,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인해 한국이 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발표했다. 세계 3대 신용평가 회사 중 하나인 미국의 무디스도 한국의 재정 건전도가 매우 건실한 것으로 평가했다.

현 시점에서 절실한 것은 우리 경제를 최소한 있는 그대로 믿는 플라시보 효과다. 부존자원과 축적된 자본없이 우리 경제가 압축성장을 해온 것은 '하면 된다(can do)'는 국민들의 정신 덕분이었다. 10월 위기설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와 증시가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플라시보 효과가 절실한 때다.

특히 정책당국은 국민이 우리 경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근본적인 원인 치료에 나서야 한다. 각종 판단지표로 가능성이 낮게 나오는 데도 대외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단순히 '우리 경제가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기 때문'식으로 돌려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외환위기 경험을 바탕으로 외화 유동성을 빨리 확보해 놓고도 위기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정경유착에 따른 부정부패,정권 교체시마다 반복되는 경제목표와 규범 수정,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 등의 탓이 크다. 이로 인해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됨에 따라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문제는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면 될수록 착시현상에 따른 투기요인이 커지는 대신,위기 불감증이 심화돼 왔다는 점이다. 경제여건이 뒤따르지 않는 고평가 요인이 유럽 재정위기와 같은 사태를 계기로 외자이탈로 연결될 경우 외화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도 다시 높아진다. 이것이 '위기 재귀설'의 실체다.

정책당국은 대외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우리 내부에서 위기설이 왜 흘러나오는지,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 경제 전반의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공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국민들은 플라시보 효과를 가질 수 있고,우리 경제와 증시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민들도 위기설이 나올 때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인포 데믹' 혹은 '리스크 데믹' 현상이다. 수시로 흘러나오는 정보나 그때 그때 발생하는 리스크에 흔들리다 보면 가능성이 적었던 위기설도 가시화될 수 있다. '경제를 안정시키고 재산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은 그 나라 국민'이라는 경구를 곱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