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아이큐가 낮은 정신지체장애인이 남성을 밀어내지 않았다고,팔 한쪽도 못 움직이는 신체장애인이 소리를 더 크게 지르지 않았다고 가해자가 가벼운 형벌을 받는 사례를 수없이 봤다"며 "상식 수준으로 법을 바로잡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성폭력 특례법 6조를 보면 이미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을 이용한 장애인 대상 강간은 친고죄 적용이 안되게 돼 있는데,그동안 항거불능 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해석해 장애인들이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다"며 "이번 대책은 이런 법의 모호한 대목을 조금 바로잡은 정도인데 뭐가 '종합대책'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책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A씨의 말이 이해가 간다. '정부 종합 대책'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지난해 몇몇 의원들이 발의했던 내용과 별반 다른 게 없다. '민심 달래기'용으로 서둘러 대책을 내놨다는 점에 대해선 담당자들도 인정한다. 한 부처 담당자는 "도가니가 화제가 되니까 총리실에서 뭔가 내놓으라고 닦달해 답답했다"며 "그냥 그간 언론에 나왔던 내용을 정리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처 관계자도 "갑자기 만들어내라고 하니까 자료를 제출했지만 특별한 건 없다"고 털어놨다. 사정이 이런데도 총리실은 "우선 조치할 과제는 신속히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해 국민의 우려를 조기에 해소했다"고 말한다.
A씨는 "이제라도 정부가 정책을 내놔 다행이긴 하지만 전에도 말만 그럴 듯하게 하다가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질질 끌었다"며 "이번에도 유야무야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10년 전 관련 단체와 인권운동가들의 작은 목소리에 정부가 귀를 기울였더라면 '도가니'는 없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