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발 시위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모양이다. 시위대들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찬 월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미국의 상징인 프런티어 정신이 실종됐다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이들을 더욱 화나게 만든다.

폴 크루그먼과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케인시안들은 이 시위를 오히려 호기로 생각한다. 스티글리츠는 아예 시위 현장에 직접 참가하고 크루그먼은 시위가 모처럼의 성공이라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싣고 있다. 정부의 재정긴축은 성장동력을 갉아먹는다며 당장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민주당계임을 뚜렷이 해온 학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학이 이미 창피스러운(discredited) 학문으로 전락한 줄도 모른다. 자신들의 현실처방이 오히려 불황의 장기화를 만들어내고 인플레를 구조화한다는 점도 당연히 인정하지 않는다. 돈을 풀고 정부가 나서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은 이미 경제학도 아니라는 것이 입증됐지만 이들은 새로운 대안은커녕 반성의 기미도 없다.

저금리를 넘어 제로금리를 정책으로 채택한 것이 벌써 만 3년이다. 정부 재정지출은 적은 것이 아니라 과도한 것이 지금 문제의 본질이다. 정부의 실패요 국가부채가 문제인 상황이다. 이들은 지금도 돈을 더 풀면 경제문제가 해결된다는 주문을 낡은 주술사처럼 되풀이한다. 불황은 고통스럽지만 경제 시스템을 균형으로 되돌리는 필요한 적응 과정이라는 원칙도 현실도 부정한다. 이들의 정책을 환영하는 건 국민들의 돈을 마음대로 써보자는 대중정치가들밖에 없다.

EU 통합 때 유럽연합이 보다 더 큰 효율성과 강력한 힘을 낳을 것이라며 떠들어댄 경제학자들도 물론 이들이었다. 남유럽이 북유럽을 모방하고 추격하는 선순환구조를 이룰 것이라는 얘기를 한 학자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리스의 디폴트 위기를 부정하고 지금도 돈을 풀어 막아야 된다는 논리를 펴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장기 침체한 원인도,스페인이 40%가 넘는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는 것도 모두 가짜 경제학자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 기울인 결과다. 경제학이 정치의 시녀로 전락한 형국이다.

경영학자들도 별다를 게 없다. 기업가 정신은 온데간데 없고 투기를 합리화하고 주가를 올리는 다양한 기법만 연구하는 것이 오늘날의 경영학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달리 항변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를 위해 구조 방정식과 네트워크이론 계량마케팅 등 온갖 수학적 모델도 차용하지만 여기에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원초적 기업가 정신은 없다.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이론 등 수백 가지 이론이 있지만 그것들의 잇단 실패에 대해선 애써 모른 척한다. 주류 경제 · 경영학자들 중에 내가 틀렸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칼뱅주의도 그렇지만 애덤 스미스 역시 땀과 노력, 그리고 고통에 대한 인내가 부의 원천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애덤 스미스는 특히 주식회사 제도가 심각한 투기적 유혹에 노출될 것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경고했다. 결국 땀과 노력 외에 진정한 부(富)의 원천은 없다. 그것은 정부가 주는 것도 아니고 화폐적 착각이 주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원칙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는 없다. 마치 정부가 구세주인양 떠들어대는 게 학자들의 유일한 마법이다. 진정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