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가문의 급진적 家風…혼외정사·계약결혼도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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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 세계명문가의 위대한 유산
최효찬 < 연세대 연구원·자녀경영연구소장 >
최효찬 < 연세대 연구원·자녀경영연구소장 >
청교도인 할머니는 급진적인 자유주의자였다. 종교를 강요하는 공교육에 반발해 손자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에 의해 키웠다. 친구가 없어 외로운 시절을 보냈던 소년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였다. 소년은 18세 때 케임브리지대에 들어간 후에야 친구들과 어울리며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을 익힐 수 있었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4년 동안 화이트헤드,톰슨,케인스,마셜 같은 친구를 사귀었다. 이들은 이후 철학과 과학,경제계에서 세계적인 거장이 됐다. 물론 이 청년도 거인이 됐다.
러셀이 유명한 것은 단순히 귀족이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수학자,노벨문학상 수상자일 뿐만 아니라 반전반핵운동을 주도하고 평화운동을 펼치며 89세 때 투옥되는 등 급진적인 자유주의자로 평생 살았기 때문이다.
흔히 명문가란 지배계급을 대표하기에 보수적인 가문으로 통한다. 하지만 러셀 가문은 급진적이고 자유적인 가풍을 500여년이나 이어오고 있다. 러셀 가문은 헨리 8세 때 외교관을 지낸 존 러셀이 백작에 임명되면서 귀족가문에 올라섰다. 스튜어트 왕가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된 윌리엄 러셀에 이어 할아버지인 존 러셀은 총리를 두 번이나 지낸 자유주의적 정치가였다. 그의 부친은 《자유론》으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의 제자였다.
그는 《결혼과 도덕》이라는 책에서 "간통은 이혼 사유가 될 수 없다. 결혼 후에도 임신을 하지 않는다면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할 자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 자신도 부인의 외도를 허용했는데,부인 도라가 외도로 임신하는 바람에 이혼하는 등 불행을 겪었다. 그는 모두 네 번 결혼했다.
그의 삶의 이력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 있다. 바로 대안학교인 '비콘힐 스쿨(Beacon Hill School)'을 55세 때인 1927년 설립했다는 사실이다. 러셀이 학교를 세우게 된 이유는 종교를 강요하는 공교육에 대한 반발과 함께 자신이 어린 시절 학교에 가지 못하고 혼자서 자란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최효찬 < 연세대 연구원·자녀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