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그리스 지원 나서야…G20 때처럼 리더십 발휘해달라"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가 해소될 것인가.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소방수로 나섰지만 그리스를 지원하기 위한 자금확충 문제는 여전한 쟁점이다. 유로존의 행보와 별개로 주목되는 것은 IMF와 민간 채권단의 움직임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입을 맞춘듯 한국 정부가 적극 지원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찰스 달라라 국제금융협회(IIF) 회장은 그리스와 유로존의 자구 노력을 촉구하면서도 "한국 정부에 그리스 지원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과 일본은 그리스 지원에 긍정적"이라며 "그리스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추가로 200억~30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 은행 400여개를 회원사로 둔 IIF는 그리스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해외 채권단을 대표하고 대변한다. 미국 워싱턴의 IIF 본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스 디폴트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궁극적인 해결책은 뭐라고 보나.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희망은 있다. 지난 7월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IMF,채권단과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면 된다. 시장의 신뢰도를 높여 그리스 국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욕을 높여야 한다. 2006~2011년까지는 그리스 정부의 부실한 정책이 문제였다. 지금은 수습책을 반대하는 그리스 국민들의 저항과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 국가)의 불확실한 리더십이 문제다. "

▼과거 중남미 국가들의 외채위기를 수습할 때 적용된 브래디 플랜과 같은 해결책이 그리스에 적용되고 있나.

"우리는 항상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다. 브래디 플랜을 입안할 때 참여한 내 경험도 아주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브래디 플랜의 일부가 그리스 플랜에 적용됐다. 유로존은 중남미보다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 그리스는 유로존 단일통화(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멕시코 등 외채위기를 맞았던 중남미 채무국들은 자국 통화를 사용했다. 부분적으로나마 자국 통화의 환율을 조정하는 정책 대응이 가능했다. 그리스는 다르다. 유로화가 강세를 보여 유로존 밖의 국가들에 비해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도 이를 감수해야 한다. 그리스 문제는 전적으로 국내 부채의 문제다. 저명한 경제학자 등 많은 비판자들은 당시 브래디 플랜의 규모가 충분치 않으며,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남미 채무국들이 더 많은 외채를 줄여야 하고,채권은행들은 더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고한 루디거 돈 부시 MIT대 교수가 비판에 앞장섰다. 지금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유로존 해소책을 비판하고 있다. "

▼그리스의 민간 채권단은 지난 7월 합의 때 21% 손실률에 합의했다. 하지만 50~70%를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채권자들에 따라 30~50% 손실률을 감수하는 곳도 있다. 채권자들의 손실률 수준에 너무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가 어떤 혜택을 얻느냐는 것이다. 유명한 경제학자들도 채권자들의 손실률을 얘기할 때 간과하는 게 있다. 손실률은 해외 투자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그리스 국민들과 그리스 국내 은행들도 포함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스 국채의 약 40%는 그리스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그리스 국내 정치를 정확하게 예상할 순 없지만 탈퇴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라고 본다. 유로존은 경제학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문화 역사적인 시각에서 봐야 한다. 유로존은 단순히 단일통화로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 운명체다. 그리스가 탈퇴한다면 자국의 이미지와 유로존의 응집력을 훼손하게 된다. 경제 회복이 수년씩 지연되고 수년 동안 국제 자금조달시장에서 소외될 수 있다. "

▼브라질 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이 그리스를 지원하는 방안을 어떻게 생각하나.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도 나서야 한다. 공동으로 자금을 모아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IMF가 적극 나서야 한다. 일본 중국 브라질 인도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이 그리스 지원에 참여한다면 큰 공동 지원자금(pool)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자금은 IMF의 구제금융과 별도로 조성돼 IMF의 관리하에 운용될 수 있다.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중국과 일본은 일단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

▼한국은 환율 변동성이 커 외환시장이 여전히 불안하다.

"이해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컸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를 우려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스 지원은 다른 문제로 봐야 한다. 한국이 그리스와 유로존 국가를 지원하는 데 기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를 모르겠다. 한국은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10위의 경제국이다. 그런 위상에 걸맞게 행동해야 하고 보다 큰 책임도 가져야 한다. "

▼IIF와 IMF가 그리스 지원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 브라질 중국 등과 협의를 하고 있나.

"우리는 중국 일본과 협의했다. 한국에도 조성 방안을 제기할 것이다. 내가 한국을 방문할 예정(24~25일)인데 한국의 정부 관계자들과도 만나 공동 지원자금 조성 방안을 제기할 계획이다. 그리스만 본다면 200억~300억달러를 추가 조성해야 한다. 한국은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개최한 의장국이었다. G20 회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

▼스페인,이탈리아도 재정위기를 맞고 있다.

"해당 국가가 극복 의지를 보여야 한다. 유로존은 응집력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유럽안정기금(EFSF)을 확충하고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

▼유로존 전체적으로 재정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자금 규모는.

"루비니 교수가 주장한 2조달러는 잘못 추정한 것 같다. 그는 훌륭한 경제학자이지만 드라마틱한 얘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먼저 말부터 뱉어놓고 본다. 매직 넘버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유로존은 실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유로존 전체로는 수천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한다. 융통성 있는 자금조달 수단을 통한 차입(레버리징)이 필요하다. "

▼한국은행이 미국 중앙은행(Fed)과 통화스와프 라인을 재개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국 경제와 금융은 탄탄하다. 한국의 민간은행들은 자본이 잘 갖춰져 있다. 유로존에 노출된 자금도 잘 관리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으나 정부가 거시경제를 관리하는 수준은 감탄스럽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실수는 했지만 이후 많은 부분을 바로잡았다.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중국의 수출 증가율과 맞먹는다. "

달라라 IIF 회장은…美재무부 출신 국제금융通

중남미 디폴트 사태 당시 '브래디 플랜' 수립에 참여


국제금융통인 찰스 달라라 국제금융협회(IIF) 회장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평가받는다. 1983~1989년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보와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이사 등을 지냈다. 재무부 재직 시절에는 '브래디 플랜'을 짜는데 참여했다.

이 플랜은 1989년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에 디폴트 사태가 발생했을 때 고안됐다. 미 재무장관이던 니컬러스 브래디가 발표한 채무구제 방안이었다. 채권은행들이 대출금을 채권(bond)으로 교환하도록 신용을 보강하는 장치를 마련,채무국의 부채 부담을 덜어줬다. 미 재무부는 브래디 채권을 발행하고 1~2년간 채권이자 지급을 보증했다.

달라라는 이어 1991~1993년 JP모건에서 동유럽,옛 소련,중동,아프리카,인도를 아우르는 투자 · 상업은행부문 담당 이사를 지냈다.

달라라가 1983년 국가부채 위기를 계기로 설립된 IIF의 회장직에 오른 것은 1993년부터.전 세계 400여개 은행과 보험사 등을 회원사로 둔 IIF는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때 채권단을 대표했다. 그는 당시 한국 해외 채권단의 협상과정에 개입했다. IIF 회원사의 절반가량이 유럽계여서 이번 그리스 재정위기 수습에도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