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실러의 시 '환희에 부쳐'에 곡을 붙인 작품이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입니다. 당시 인간의 목소리를 교향곡에 도입하는 것은 혁명적인 시도였습니다. 문학에 조예가 깊은 베토벤이 실러의 시에 담긴 인류애를 예술적으로 극대화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합창'은 문학적 이상과 음악적 영감이 조화를 이뤄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최고의 완성품입니다. "

원로 독문학자인 이창복 한국외대 독일어과 명예교수(74).1966년부터 9년간 독일 쾰른 대학에서 유학하던 시절부터 그의 관심사는 '문학과 음악의 상호작용'이었다. 독일이 대 문호와 위대한 음악가를 수없이 배출하고 불멸의 명작을 탄생시킨 저력이 두 장르의 융합에 있다는 데 주목한 것.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내용을 《문학과 음악의 황홀한 만남》(김영사,700쪽,3만3000원)이란 책으로 엮어냈다.

"독일 TV에서는 오페라 공연이 끝나면 출연 배우들이 교수와 함께 벌이는 토론을 중계했어요. 배우들의 표정과 대사와 함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죠.음악 공부를 하는 유학생들이 문학 관련 학위 논문을 제출하느라 공부하는 모습도 흥미로웠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

그는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들으며 라인강의 신화를 공부했고,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쳐 들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심포니를 들었다.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감상하며 하이네의 연시를 읽었다.

"시간이 참 오래 걸렸네요.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한 것은 6년 정도인데,유학 시절부터 하나하나 정리했으니 훨씬 오래됐죠.생활이나 다름없었어요. "

책은 중세부터 르네상스시대를 거쳐 근현대까지 독일 문학사를 개관하면서 작가의 영혼과 음악가의 영감이 어떻게 만나 위대한 명작을 만들었는지 미학적 통찰로 풀어낸다. 예술가의 삶이 작품 속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음악이 작가의 심리적 · 철학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명한다.

"마르틴 루터는 음악가였어요. 민요나 전래되는 가락을 재구성해서 라틴어로 부르던 찬송가를 개혁했죠.찬송가를 독일화시키면서 대중화해버리죠.성서를 번역하고 종교개혁할 때 음악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괴테는 세계적인 음악가와의 교류를 통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파우스트' 등 대작을 썼습니다. 그는 작곡가들의 음악을 자신의 시로 장식하고 채색했던 시적 세계의 창조자였습니다. "

서정시에서 탁월한 언어 음악 재능을 드러낸 하이네,철학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음악적 운율을 활용한 니체 등을 밀도 있게 소개한다. 극작가 브레히트는 물론 바그너의 영향을 깊게 받은 토마스 만의 예까지 거장 문학가의 세계를 차례로 분석한다.

"음악과 문학이 합쳐지면 따로 떨어져 있을 때 기대할 수 없는 엄청난 예술의 힘이 창출됩니다. 세계적인 유대인 지휘자 바렌보임의 오케스트라 이름은 '서동시집'입니다. 동 · 서의 인류애적인 교류를 주창한 괴테의 시집이죠.브레히트의 시는 1989년 성난 군중의 노래가 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

그는 문학과 음악의 상호작용을 역사 · 문화적 발전 과정과 함께 미학,철학,심리학,사회문화사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풀어낸다. 책에는 예술가의 고뇌와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친필원고와 서신,주요 작품의 초판본 표지,악보 등 희귀 사진과 자료들도 실려 있다.

이 교수는 "모든 예술에는 상호작용이 있다"며 "이 책이 다른 언어의 문학과 음악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에 촉진제가 되고,다른 예술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