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원으로 음식한류 일군 '불가리아 라면왕'
"오늘 점심엔 '미스터팍' 끓여 먹었어." "저녁 때 '미스터 팍' 먹으러 갈까?"

요구르트로 잘 알려진 동유럽 국가 불가리아에서 '미스터 팍'은 라면의 대명사다. 대형 유통매장,분식집,작은 구멍가게마다 '미스터 팍'이 맨 앞자리에 진열돼 있다. 미스터 팍(Mr.Park)은 이 제품을 만든 박종태 초이스LTD 대표(50 · 사진)의 성을 딴 라면 브랜드다. 그는 30세가 되던 1991년 공산주의 체제에서 막 벗어나 먹을 것도 변변치 않던 불가리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불가리아 라면왕'으로 불리는 중견 기업인이다.

박 대표는 처음엔 국내 제품을 수입해서 팔았다. 그러다가 10여년 전 '미스터 팍' 브랜드 제품을 론칭,지금은 불가리아는 물론 러시아 중국 나미비아 등 전 세계 27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중국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장을 두고 있고,현재 불가리아에 자체 공장을 지을 정도로 사업 규모가 커지고 있다.

광운대 무역학과를 나와 외국계 무역상사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일하던 그가 불가리아에 정착하게 된 건 우연히 떠난 출장이 계기가 됐다. 당시 불가리아의 상황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길거리 상점의 매대는 텅텅 비어 있었고 우유나 밀가루를 사려면 수백m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박 대표는 "어려운 도시 상황을 보며 '이곳에서 생필품을 파는 사업을 해야겠다'는 도전정신이 생겼다"며 "돌아가자마자 사표를 낸 뒤 반지하 월세방 보증금을 뺀 600만원만 달랑 쥐고 불가리아로 향했다"고 했다.

일단 전자제품,섬유,의류,식품 등 다양한 생필품을 수입해 현지에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지 한국 주민이 20명도 안 되던 시절,경험도 없는 젊은 한국인이 사업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가 막 유입되며 '한탕주의'가 만연했던 때라 믿었던 직원이나 거래처로부터 수도 없이 사기를 당했다"며 "길거리에서 '오리스초'(쌀벌레라는 뜻의 불가리아어 · 동양인을 비하하는 욕)라는 비아냥을 듣는 등 인간적 모욕도 여러 번 겪었다"고 회상했다.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의류 등 타 사업을 정리하고 라면 등 식품 시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지 호텔 주방장들을 모아놓고 시연회를 열고,동네의 작은 슈퍼마켓까지 일일이 방문해 라면을 맛보이며 판로를 개척했다. 어찌나 돌아다녔는지 새로 산 자동차 계기판은 1년 만에 주행거리 8만㎞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브랜드 인지도는 조금씩 올라갔고,맨손으로 시작한 사업은 매년 20~30% 성장해 지난해 라면으로만 800만달러(92억여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안정 궤도에 올랐다.

박 대표는 요즘 선식을 넣은 시리얼,두부 등 새 메뉴를 개발해 라면을 이을 새로운 '음식 한류'를 구상하고 있다. 또 한민족글로벌벤처네트워크(INKE) 소피아지부 의장으로서 국내 벤처인들이 불가리아는 물론 근처 동유럽 국가들에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생소한 시장이라고 겁내지 말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오게 마련"이라며 "불가리아의 첫 번째 한국인 사업가로서 후배 벤처인 양성에 더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