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저축銀 해법, 전셋값 대출서 찾아라
최근 우리 부동산 시장은 가격 하락으로 인한 가계대출 부실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격안정기에 진입해 있다. 추세적 가격안정기에는 집값 상승 기대가 꺾이기 때문에 시장원리에 따라 전세수요가 커지게 된다. 그래서 또 다른 걱정거리로 전세난을 겪고 있다. 다행히 이번 가을 전세난이 최악의 상황은 면한 듯하지만,주변 시세를 내세운 집주인의 전셋값 인상 요구에 당장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임차인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 안정기에 집주인이 주택 임차가격 결정을 주도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매매 차익을 노린 주택수요가 가라앉은 상황에서,주택을 소유하기보다는 임차하려는 수요가 많아지는 반면,임대용 주택은 쉽게 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장 수급 상황만으로 최근의 전세난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얘기하면,전세 보증금은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임차인에게 무이자로 빌린 돈이다. 만약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으로 기대하는 투자수익을 임차인이 매달 직접 지불할 수 있다면 집주인 입장에서는 굳이 전세 보증금을 요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값 안정기에는 전세 대신 월세가 확산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전세 비중이 많이 줄고 있는 추세다. 인구주택총조사 상의 임차가구 점유 형태 분포를 보면,집값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한 2000년까지 66%였던 전세 비율이 2010년에는 50%까지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월세가 늘기는 했지만,대부분은 전세 보증금의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형태의 보증부 월세다. 순수 월세의 경우 2000년의 10%에서 2010년 8%로 오히려 소폭 줄어들었다.

월세 전환 속도도 문제지만,전세의 월세전환율(월세이율)도 문제다. 집주인 입장에서 볼 때 전세 보증금을 올려 받아도 큰 투자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저금리 기조 속에서도 여전히 전세의 월세전환율은 금융회사 대출 이자율을 훨씬 웃돌고 있다. 아직도 월세 시장에서는 월 1푼(1푼은 전체의 100분의 1)의 월세전환율이 상식으로 통하는 듯하다. 복리로 쳐서 연 13%에 달하는 높은 수준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비싼 월세를 내기보다는 차라리 당장 힘들더라도 전세 보증금이 차라리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에서 싼 금리로 목돈을 마련할 수 없는 서민층들은 비싸지만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전세=중산층, 월세=서민층'이라는 등식이 여전히 성립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서 손쉽게 빌려 조달할 수 있다면 집주인에 대한 세입자의 교섭력은 훨씬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전세 보증금은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이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인 2006년과 2010년의 가계 자산변화를 비교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주택 소유 가구의 순자산은 소폭이지만 감소한 반면 세입자 가구의 자산은 오히려 약 2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보증금을 담보로 한 대출이라면 그만큼 안전성이 높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해법을 저축은행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 요즘의 저축은행 사태는 근원적으로는 저축은행이 안정적인 대출처를 찾지 못한 데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신금리를 능가하는 대출처를 찾다 보니,감당하기 어려운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막무가내식으로 대출하려 한 것이다. 이에 비해 전세 보증금 대출은 훨씬 안정적이다. 더욱이 저축은행이 본래의 지역밀착형 모습으로 돌아간다면,그 안정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전세난에 도움을 주고 저축은행에도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원동 < 한국조세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