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천성산 도롱뇽과 한강 꾸구리
그해(2005년) 2월은 시끌벅적했다. 언론의 '시선'은 온통 승려 지율이 단식 중이던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 쏠렸다. 그 즈음 지율의 '곡기 끊기'는 100일째로 접어들었다.

지율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공사 찬성'에 압도적이었던 여론도 점차 동정론 쪽으로 기울었다. 한적했던 정토회관엔 이해찬 국무총리 등 당시 집권당 거물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뒤질세라 여야 의원 100여명은 '천성산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촉구 결의안'에 서명했다. 여론에 떠밀린 노무현 정권은 결국 KTX 천성산 터널 공사의 일시적 중단과 새로운 환경영향평가 실시를 약속했다. 죽음의 문턱에 갔던 지율도 단식 중단을 선언했다.

극적인 드라마에 일부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다. "터널이 뚫리면 늪이 말라 도롱뇽이 서식지를 잃는다"며 4차례에 걸쳐 236일간 단식을 벌였던 지율도 '천성산 잔다르크'로 떠올랐다.

'감동 드라마'는 거기까지였다. '반대부터 하고 보자'는 떼법에 휘둘린 대표 사례로 회자된다. KTX 열차가 하루 60여회 달리고 있지만 천성산은 생태의 낙원이다. 늪 바닥엔 도롱뇽이 부지기수다. 환경근본주의자들의 어거지가 들통난 셈이다.

어거지의 폐혜는 적지 않았다. '단식' 때마다 공사가 중단됐고,환경영향평가가 다시 실시됐지만 결론은 사실상 그대로였다. '천성산 지역 자연변화 정밀조사 보고서' 등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나왔던 5개 보고서의 과학적 결론은 단식 때마다 부정됐다. "천성산 습지는 강수에 의해 만들어져 터널공사가 습지와 동식물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다"는 일관된 결론은 "산이 울고 있다고 느꼈고,산이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지율과 "동식물 영향평가가 일부 빠져 객관성이 없다"는 환경단체엔 속수무책이었다.

어거지는 되풀이되고 있다. 대형 국책사업만 나오면 환경단체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전문 시위꾼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 투쟁을 벌인다. 4대강 사업,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 장소를 옮겨가며 시위를 이어간다.

투쟁의 양상은 판에 박은 듯하다. 정부와 사업자가 실시한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정권의 의도대로 짜깁기 됐다'는 이들의 주장은 변함이 없다.

공사장을 틀어막아 놓고 트럭 밑에 드러누워 차량운행을 방해하는 모습도 그대로다. 천성산 도롱뇽처럼 4대강 사업지엔 '꾸구리',해군기지 현장엔 '붉은발말똥게'로 보호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꾸구리와 붉은발말똥게는 멸종위기 2등급 민물 고기와 민물 게다.

최근 잇따라 준공되고 있는 4대강 보(洑)는 환경친화적인 휴식공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보 주변의 습지는 생태보고로 서서히 자리잡고 있다. 최근 금강 둔치를 둘러본 세계적인 조경환경학자인 스티븐 드라운 미국 아이다호주립대 교수가 "보의 컨셉트는 생태복원"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순차적으로 완공되고 있는 4대강 보엔 습지와 자전거 길,공원,마리나 시설 등이 들어서 일대의 경관을 크게 바꿔 놓고 있다. 4대강 사업이 사실상 완공되는 내년 봄,토종 물고기인 꾸구리가 금강과 남한강에서 활개를 칠 날도 머지않았다. 그때가 되면 환경단체들은 또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 지 궁금하다.

김태철 지식사회부 차장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