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리더십 회복' 훈수 둔 G20 주역
"위기를 낭비하지 말자.(Let's not waste the crisis)"

사공일 한국무역협회 회장(사진)은 13일(현지시간)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이번 위기를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구조조정을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을 방문 중인 사공 회장은 이날 하버드대의 초청을 받아 '세계 경제의 리더십 부재와 G20(The global economy,leadership gap and the G20)'이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사공 회장은 이 자리에서 "위기에 처한 남유럽 국가들은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 과정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며 내건 조건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IMF의 고강도 처방은 한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구조조정을 실행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사공 회장은 특히 "당시 일본 정책당국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국이 부럽다고 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일본도 금융회사들이 오랜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과 달리 통화위기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IMF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는 것.그는 "그래서 일본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금융개혁과 재정 긴축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사공 회장은 "위기에 처한 유럽 국가들도 단기적인 유동성 공급과 함께 중장기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수반해야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한국의 경험을 거울 삼아 이번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구제금융의 대가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사국 지도자들이 긴밀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서울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을 지낸 그는 국제사회에 뚜렷한 리더십이 없다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사공 회장은 "G제로(0)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제사회의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이라며 "이 같은 무극 체제(non-polar world)에서 국제사회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 리더십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G20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G20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상당 부분 기여했지만 아직 정통성있고 신뢰성있는 지도체제로서의 존재감을 증명하는데 미흡했다"며 "유로존 위기를 해결하는 데 G20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달 3~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6차 G20 회의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스턴=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