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유럽 은행…UBS 등 무더기 등급 강등
유럽 은행들이 사면초가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된 데다 보유 중인 그리스 국채 상각(부채탕감) 규모를 대폭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어 손실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유럽 금융당국의 자본확충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독일 경제연구소 이포(Ifo)는 "유럽 재정위기가 해당 국가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은행권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13일(현지시간) 스위스 UBS와 영국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로이즈뱅킹그룹,독일 란데스방크베를린,히포은행 등 5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또 바클레이즈(영국),BNP파리바 소시에테제네랄(프랑스),크레디트스위스(스위스),도이체방크(독일),뱅크오브아메리카(BoA),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미국) 등 12개 대형 은행들을 '부정적 관찰' 대상에 편입,등급 강등 가능성을 경고했다.

유럽 은행들의 등급 강등은 국채 손실 규모가 예상보다 클 것으로 우려되는 데다 핵심 자기자본비율 상향 조정 등 규제 강화 움직임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지난 7월 그리스 2차 구제금융 조건으로 국채 상각 비율을 21% 선에서 합의했다. 그러나 최근 장클로드 융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은 이 비율을 60%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막는 대신 그리스가 갚아야 할 부채의 원금을 절반 이상 깎아주자는 것이다. 이는 민간은행들의 손실 확대를 의미한다. 게다가 유럽 은행 감독기관인 유럽은행감독청(EBA)은 은행권의 자본확충 기준인 핵심 자기자본비율을 5%에서 9%로 높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피치는 "현재 시장에 남아 있는 위험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세계 금융시스템이 직면했던 스트레스와 유사하다"며 "최근 금융위기 역사는 세계적인 대형 은행도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정위기로 사실상 시장에서는 신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대안으로자산 매각 등에 나섰다가는 실물경제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요제프 아커만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는 "자본확충 기준을 높이고 그리스 등의 국채를 대규모로 상각하면 신용경색이 초래돼 유로존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스페인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낮춰 위기감을 키웠다. 등급전망도 '부정적'으로 유지,추가 등급 하향 가능성을 열어뒀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