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통화스와프 발표 혼선, 외교부 "합의"…재정부 "필요없다"
외교통상부와 기획재정부,한국은행이 외환시장에 메가톤급 충격을 줄 수 있는 한 · 미 통화스와프(중앙은행 간 통화 맞교환) 체결 여부를 놓고 어처구니없는 혼선을 빚었다. 외교부가 "양국 정상이 통화스와프 추진에 합의했다"고 강조하자 재정부와 한은이 "현 단계에선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발단은 지난 13일 밤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표문 가운데 한 · 미 통화스와프와 관련된 문구였다.

당초 이날 아침 청와대가 배포한 자료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시와 같이 외환유동성 공급을 통한 환율 안정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양국 금융당국 간 구체 협력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2008년 10월 300억원 규모로 체결됐다가 지난해 2월 종료된 한 · 미 통화스와프를 재추진하겠다는 의미였다. 외교부는 자료 작성 과정에서 외환당국과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재정부는 곧바로 "사실과 다르다"며 이를 부인했다. 현 상황에서 한 · 미 통화스와프 추진은 '한국의 달러 사정이 다급한 것 아니냐'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외교부 쪽에서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며 "왜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외환당국은 곧바로 발표문 수위 조절에 나섰다. 협의 결과 양측은 이날 밤 11시 '한 · 미 정상회담 결과 언론 발표문 변경 사항'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긴급 배포했다.

당초 문안 중 '외환유동성 공급을 통한'이란 문구를 빼고 '향후 필요시'란 문구를 추가했다.

재정부와 한은은 "향후 위기시 2008년과 같은 수준의 다양한 구체적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데 (양국 정상이)동의했다는 의미"라며 "현 단계는 한 · 미 통화스와프 협정을 추진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변경 사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혼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청와대는 기자들에게 "통화스와프란 표현은 그대로 써도 된다"고 브리핑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14일 "지금까지는 통화스와프에 대해 구체적 움직임이 없었는데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발표돼 우리도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일각에선 양국이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해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중수 한은 총재도 13일 기자회견에서 통화스와프 추진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긍정도 부정도 않는)NCND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해 지난달 27일 국정감사 때 답변과는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당시 "통화스와프를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적에 김 총재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외환시장은 통화스와프 추진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14일 원 · 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전 오른 1156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2008년 10월 한 · 미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소식에 환율이 하루 만에 177원 급락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한 외환딜러는 "일종의 정치적인 제스처로도 보인다"며 "시장이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일 경우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마치 한 편의 미숙한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며 "한 · 미 통화스와프처럼 민감한 사안을 이렇게 처리하는 정부가 황당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주용석/이심기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