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식언(食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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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 은나라의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면서 말했다. "나를 도우면 큰 상을 내릴 것이다. 나를 믿도록 하라.나는 식언(食言)을 하지 않는다. " 유교경전 '서경' 탕서편의 한 대목이다. 식언은 말(言)을 먹어버리는(食) 것이니 말만 해놓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탕왕은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처자식까지 죽여 용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식언이비(食言而肥)'란 고사성어도 있다. 노나라 대신 곽중은 몸이 비대했다. 맹무백이란 인물이 곽중을 모욕할 생각으로 묻는다. "곽중,무엇을 먹고 그리 살이 쪘소?" 옆에서 듣고 있던 애공이 평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맹무백에게 창피를 주려고 이렇게 쏘아붙였다. "맹무백,당신의 (거짓)말을 하도 자주 먹으니 곽중이 어찌 살이 찌지 않을 수 있겠소."
살다 보면 식언을 피할 수 없지만 가장 자주 하는 건 역시 정치인들이다. 거짓말 잘하는 직업을 묻는 한 여론조사에서 76%가 정치인을 꼽았을 정도다. 처칠도 정치인의 자질에 대해 "내일 내주 내달,그리고 내년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할 수 있는 재능과 훗날 그 예언이 들어맞지 않았던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정치 풍자 유머는 더 통렬하다. 정치인들을 태운 버스가 밭으로 굴러 떨어졌단다. 밭을 갈던 농부는 부상당한 정치인까지 모두 땅에 묻었다. 경찰이 생존자는 없느냐고 묻자 농부는 "몇몇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묻어버렸다"고 했다.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 대한 농부의 대답은 이랬다. "정치인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 아닌가요?"
5년 전 한 · 미 FTA가 양국 관계를 지탱해 줄 기둥이라고 했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태도를 확 바꿔 '제2의 을사늑약'이라며 국회 비준을 반대하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겐 "옷만 입은 이완용"이란 폭언까지 내뱉었다. 한나라당의 '8월 처리'방침도 식언이 되고 말았다. 여야 합의 운운하는 황우여 원내대표나 대화를 모색한다는 남경필 외통위원장이나 총대 멜 생각은 아예 없어 보인다.
국익은 나 몰라라 한 채 정략에 따라 툭하면 말을 바꾸는 식언의 정치판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지만 식언이 난무하니 말(馬) 대신 정치인들만 살이 찌게 생겼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아야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식언이비(食言而肥)'란 고사성어도 있다. 노나라 대신 곽중은 몸이 비대했다. 맹무백이란 인물이 곽중을 모욕할 생각으로 묻는다. "곽중,무엇을 먹고 그리 살이 쪘소?" 옆에서 듣고 있던 애공이 평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맹무백에게 창피를 주려고 이렇게 쏘아붙였다. "맹무백,당신의 (거짓)말을 하도 자주 먹으니 곽중이 어찌 살이 찌지 않을 수 있겠소."
살다 보면 식언을 피할 수 없지만 가장 자주 하는 건 역시 정치인들이다. 거짓말 잘하는 직업을 묻는 한 여론조사에서 76%가 정치인을 꼽았을 정도다. 처칠도 정치인의 자질에 대해 "내일 내주 내달,그리고 내년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할 수 있는 재능과 훗날 그 예언이 들어맞지 않았던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정치 풍자 유머는 더 통렬하다. 정치인들을 태운 버스가 밭으로 굴러 떨어졌단다. 밭을 갈던 농부는 부상당한 정치인까지 모두 땅에 묻었다. 경찰이 생존자는 없느냐고 묻자 농부는 "몇몇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묻어버렸다"고 했다.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 대한 농부의 대답은 이랬다. "정치인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 아닌가요?"
5년 전 한 · 미 FTA가 양국 관계를 지탱해 줄 기둥이라고 했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태도를 확 바꿔 '제2의 을사늑약'이라며 국회 비준을 반대하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겐 "옷만 입은 이완용"이란 폭언까지 내뱉었다. 한나라당의 '8월 처리'방침도 식언이 되고 말았다. 여야 합의 운운하는 황우여 원내대표나 대화를 모색한다는 남경필 외통위원장이나 총대 멜 생각은 아예 없어 보인다.
국익은 나 몰라라 한 채 정략에 따라 툭하면 말을 바꾸는 식언의 정치판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지만 식언이 난무하니 말(馬) 대신 정치인들만 살이 찌게 생겼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아야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