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모든 결실의 과정에는 아픔이 스며 있습니다. 탐스럽게 잘 익은 저 대추의 몸 속에도 숱한 상처와 흉터가 새겨져 있지요. 우리의 가을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대추 한 알.그 안에 태풍과 천둥,벼락의 순간들이 얼마나 뜨겁게 새겨져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마음이 붉어집니다. 저 둥근 아름다움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무서리와 땡볕,초승달의 나날이 녹아 있는지.찬이슬을 맞고 가장 붉게 몸을 말린 대추를 홍조(紅棗)라고 부르는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고두현 문화부장 · 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