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기자들이 점령한 여의도
금융자본주의를 규탄하겠다며 15일 서울에서 열린 '여의도 점령' 시위는 100여명이 겨우 참여한 가운데 별다른 반향 없이 막을 내렸다. 여의도는커녕 금융감독원 앞 인도마저 제대로 점령하지 못했다.

금융소비자권리찾기연석회의 등 시위 주최 단체들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갑작스런 폭우로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반응이지만,날씨탓으로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다. 진정으로 절실한 요구였다면 날씨가 대수였겠는가. 한국판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로 불리며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여의도를 점령한 것은 시위대가 아닌 기자들'이었다는 말도 나왔다. 100명에 가까운 취재진이 몰리면서 시위장소는 '기자반 시위대반'이었다. 시위 참여자가 워낙 적다보니 인터뷰를 하기 위해 기자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까지 빚어졌다.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와 달리,특정 조직의 목적에 따라 의도적으로 조직된 행사이다보니 예고된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최 단체들은 집회신고를 하고 마이크를 준비하는 등 국민들의 자유로운 참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마당을 만들어주는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했지만,결국 '그들만의 잔치'가 돼버렸다. 자발적 참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없이 찾아온 시위 참가자들이 플래카드를 만들 수 있도록 주최 측이 준비한 도화지 수백장과 유성 매직은 시위가 끝나기까지 전혀 쓰이지 않았다. 국민 참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그들이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쳤다. 이번 시위에서 초라한 성과를 거둔 단체들은 이번 주에 '2차 여의도 점령' 시위를 열겠다고 했지만,지금으로서는 1차 시위의 복제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헌법에 보장된 시위의 자유를 반대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남들이 한다니까 우리도 하겠다'는 식은 국민적 공감을 불러오기 어렵고,뜻하는 성과를 거둘 수도 없다. 부족한 점이 있지만 아직은 여의도 금융가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점령하자'는 구호를 외쳐서는 앞으로도 '날씨탓'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