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담대한 인간
당신은 어떤 사람을 멋있다고 느끼는가? 혹은 부러워 하는가? 어릴 적 나는 뭔가를 최초로 해낸 사람,자기 분야에서 1인자가 된 사람을 멋있어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사 이런저런 면을 경험한 지금은 더 이상 최초의 기록에 환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려움과 맞닥뜨렸을 때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을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게 되고 멋지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자신의 재능에 노력을 쏟아부어 빛나는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여전히 아름답고,성공에 다다르기까지의 이야기는 늘 감동적이다. 그런데 한 가지.성공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잘하는 것,능력을 우선적으로 떠올린다. 그러나 성취의 이면은 겉에서 짐작하는 것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평소 실력은 출중한데 시합에만 나가면 너무나 긴장해서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 경쟁자에게 지기 전에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이 사람이 우승을 하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은 어쩌면 경기력 향상보다도 마음 수련일 것이다. 또한 장애가 앞을 가로막을 때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비전이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그러나 생각해보라.우리는 일이 잘 풀릴 때는 비전 없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그래서 슬슬 불안감이 밀려올 때 그때 우리는 비전을 언급한다. 비전 없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더 늦기 전에 그만 접는 게 낫겠다고.하지만 역사는 종종 우리들에게 말해준다. 그것은 포기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기업에서 일해 보면 하루도 위기가 아닌 날이 없고,위기 아닌 해가 없다. 위기는 얼굴을 바꿀 뿐 항시 옆에 있으며 늘 새로운 해법을 요구한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지레 겁먹고 포기한다면,용기를 내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어도 성취는 없다고.고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지,아니면 비전이 없다고 지레 포기하는지,이런 태도들이 모여 인생의 모양을 결정하고 성취는 대체로 우직한 사람의 편에 선다. 뛰어난 재능과 능력이 반드시 성공을 가져다 주는 건 아니고,반대로 평범한 재능의 인간이 놀라운 성취에 이르기도 하는 인생사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튼튼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 부럽다. 웬만한 일쯤은 담담하고 무연하게 넘길 수 있는,어려움 앞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부럽다. 그러나 이런 바람과는 달리 나는 점점 더 자주 내 안의 소심함과 마주치고,한계를 느껴 돌아보면 거기 심약한 내가 보인다. 아는 것과 행하는 건 참으로 다르며,그 사이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먼 것 같다.

몇 년 전 오바마가 '담대한 희망'을 말했다. 한 인간이 담대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야말로 멋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