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는 롯데건설 신입직에 최종합격하셨습니다.'
지난 6월 청년구직자 심선일 씨(28)는 이 문자메시지를 수차례나 확인했다. 심 씨는 4년제 대학 졸업장과 토익점수, 해외연수 경험이 없는 일명 '3무(無) 구직자'이다. 이 때문에 면접을 본 후에도 합격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업계 7위의 대기업(국토해양부, 시공능력평가)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심 씨가 롯데건설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롯데그룹이 도입한 파격적인 지원자격 덕분이다. 롯데그룹은 올해부터 지원자격에서 '대학졸업'을 뺐다. 4년제 대학 졸업자 중에서도 일류대 졸업생에게만 허용되던 좁은 취업관문이 허물어진 것이다. 롯데그룹은 이와함께 정규직 전환율이 평균 60%인 인턴사원 채용에도 팔을 걷었다.
14일 고스펙 없이 바늘구멍을 뚫은 롯데그룹의 신입사원 세 명을 만났다. 롯데건설 심선일 씨와 롯데닷컴 안유미 씨(26), 롯데백화점 오민아 씨(23). 세 사람에게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비결을 들어봤다. 세 사람이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어서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서로의 입사 후기를 나누며 분위기는 금세 고조됐다.
◆ 삼인삼색(三人三色) 롯데 취업 스토리…입사 성공 비결은?
심선일 씨는 롯데그룹이 처음으로 뽑은 전문대학 졸업생이다. 그는 구직자들이 기본적으로 준비하는 토익점수를 내지도 않고 합격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289개사가 요구하는 토익점수 하한선은 평균 711점이다.
롯데그룹 인사임원에 따르면 심 씨는 과거 건축 전기설계 분야에서 쌓은 경험 덕분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심 씨가 지원한롯데건설 플랜트 ENG부문 전기설계팀은 능력과 실무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 인사임원의 설명이다.
심 씨는 2007년 대학을 졸업하고 전기설계 회사에서 2년9개월 간 근무했다. 전 직장에서 롯데건설이 진행하는 '롯데센터 인 하노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그는 모아둔 월급으로 1년6개월 간 외국을 여행한 후 롯데건설에 입사지원했다.
그는 "임원진들이 실제 면접에서 물은 것은 스펙과 관련된 게 아닌 실무적인 지식이었다"며 "취업하려면 현장에 대한 경험을 쌓고 그 능력을 남에게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아이폰으로 바늘구멍을 뚫은 신입사원도 있다. 지난해 7월 온라인쇼핑몰 롯데닷컴 스마트픽추진팀에 입사한 안유미 씨는 8주간의 인턴과정을 거친 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안 씨는 인턴 면접 때 중국에서 사온 아이폰으로 IT분야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롯데닷컴 관계자는 "임원진들의 눈이 안유미 씨의 아이폰으로 쏠렸다"며 "빠르게 변하는 IT분야를 따라갈 수 있는, 롯데닷컴이 필요한 인재와 얼리어답터인 안 씨가 일치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안유미 씨는 인턴시절 롯데닷컴의 사내 뉴스레터인 '파란형광펜'을 작성했다. 회사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처음이라 띄어쓰기 하나까지 물었고 집에 가져가 아버지에게 검토를 받기도 했다.
안 씨는 "인턴기간 끊임 없이 배우려고 하는 관심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선배의 말을 들었다"며 "공채보다 넓은 인턴채용을 통해 자신의 열정을 쏟으면 취업이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2월 롯데백화점에 입사할 예정인 오민아 씨의 경우 두 차례나 경쟁을 치렀다. 오 씨는 지난해 12월 롯데백화점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고 인턴과정을 거쳐 정규직으로 발탁됐다. 입사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린 셈이다. 공채로 채용된 동기들보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남들보다 빨리 회사업무를 익히고 안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민아 씨는 "친구들에게 '스펙이 전부가 아니다. 도서관에서 나와 실무경험을 쌓아라'고 조언한다"면서 "파주, 인천, 강남 등 모든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관찰일지를 쓰고 백화점 3사를 비교분석는 등 발로 뛴 경력이 입사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모전 당선 비결에 관해 "대학원생들의 전문적인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대학생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들었다"며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상의 시 '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를 '영고객 대상 e-마케팅 전략'에 적용해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생각을 풀어나갔다"고 귀띔했다. 오 씨는 원(영 고객)을 깨뜨린 용의자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3사를 비교분석하고 범인인 직선은 결국 롯데가 되는 내용으로 공모전 작품을 구성했다. 공모전을 보고서 형식이 아닌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끈 것 같다고 그는 덧붙였다. ◆ 롯데그룹 "학력, 성별, 장애 장벽 없앤다"
롯데그룹은 세 신입사원과 같은 실무형 인재를 뽑기 위해 올해부터 학력과 성별, 장애 등의 지원 장벽을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상반기에는 지원자격에서 '대학졸업'을 빼고, 하반기에는 고등학교 졸업자까지 기준을 대폭 확대했다. 현재 서류전형을 통과해 면접을 앞둔 고등학교 졸업자는 100명 이상이다.
전영민 롯데그룹 정책본부 인사팀 이사는 "채용문턱을 낮춰 실무능력을 갖춘 인재를 적극 흡수하기 위함"이라며 "학력보다는 능력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턴채용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롯데그룹 인재확보위원회에 따르면 롯데그룹 인턴사원의 정규직 전환율은 평균 60~70%이다. 롯데그룹이 올해 상반기에 뽑은 인턴은 630여명으로 총 300명이 정규직으로 뽑혔다. 이는 지난해 매출 500대 기업의 인턴사원 정규직 전환율(39.1%)보다 1.5~2배 더 높은 수준이다(취업포털 인크루트).
롯데그룹의 인턴사원은 정규직 채용을 전제로 뽑기 때문에 교육 및 평가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롯데그룹은 개선과제 및 UCC제작 발표, 인턴십 일지 작성, 멘토·팀장·인사부서·임원평가 등을 통해 인턴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al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