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관객들도 판소리 흥과 멋에 열광"
"한 달 동안 아비뇽에 살면서 숙소에서 공연장까지 1시간씩 걸어다니고,관객을 모으기 위해 거리 홍보에도 나서며 열심히 했는데 그새 훌쩍 자란 것 같아요. 한국을 대표해서 온 우리가 힘들다고 대충 할 수는 없잖아요. "(소리꾼 김소진)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로 세계 무대를 휩쓸고 있는 '판소리계 아이돌' 세 여인을 만났다. 맏언니 이자람(32)과 이승희(29),김소진 씨(24)는 지난 여름 아비뇽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들은 오는 20일부터 열흘간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사천가2011' 12회 공연을 펼친다.

이승희 씨가 "처음에 분장실에서 실려나가고,다음에 무대로 오르는 계단에서 실려나가고,마지막엔 무대에서 실려나가고 공연이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실려나가는 거리가 길어졌다. 그래도 장기 공연을 하다 보니 두시간 동안 어떻게 관객을 쫙 끌고가야 되는지 그 진짜 맛을 알게 됐다"고 하자 이자람 씨는 "아비뇽에 정말 잘 갔다 온 것 같다. 소진이도 승희도,나중엔 아주 관객을 가지고 놀더라.공연 초반과 후반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자람 씨가 작창한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사천의 선인'을 21세기에 맞춰 재구성한 작품.2007년 초연 이후 두산아트센터,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등 국내에서 일곱 차례 공연했고 전회 매진 기록을 세웠다.

올해 폴란드 콘탁 국제연극제에 참가해 소리꾼 이자람 씨가 '최고 배우상'을 거머쥐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 3월 프랑스 리옹 국립극장,파리 시립극장 초청에 이어 7월에는 세계 최대 연극축제인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미국 시카고,워싱턴 공연 및 뉴욕 APAP마켓 초청도 이어졌다. 내년에는 이스라엘,일본,프랑스 마르세이유 및 남부 투어와 대만 공연도 한다.

'사천가'는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청년실업 등 팍팍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뚱뚱한 여자 순덕의 고군분투기를 다룬다. 순덕 역의 소리꾼은 1인 다역을 맡으며 두 시간 동안 관객을 쥐락펴락해야 하는 캐릭터.체력 소모도 엄청나다. 이자람 씨는 장기 공연을 위해 2009년 두 명의 소리꾼을 캐스팅했다.

맑은 고음이 매력적인 이승희 씨는 "첫 해에는 자람 언니에게 5~6개월 정도 전수받느라 바쁘게 보냈고,올해 두 번째 공연에는 전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생각과 부담에 더 노력했다"며 "소리꾼은 외로운 직업인데 같이 만들고 가족같이 지내면서 공연할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귀여운 외모에 중저음이 장점인 김소진 씨는 "'사천가'를 하기 전까지 음정 하나하나 분석해가며 기교 중심으로 소리를 했었는데 이제 관객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며 "한자리에 서서 해야 하는 판소리보다 1인 다역의 연기가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목소리만 들으면 인생 몇 십년 더 산 사람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그는 국악계에선 보기드문 공력의 소유자.욕심도 많아 올해 서울대 국악과와 국문과를 복수전공으로 졸업했다.

이승희 씨와 김소진 씨는 '판소리만들기 자'의 일원이 되고 나서 각각 '허세가'와 '앙드레 삼월이' 등 두 작품을 작창했다. 젊은 소리꾼이 설 무대는 물론 창작물이 사라지는 요즘 반가운 소식이다.

이자람 씨는 "소리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사천가를 할 수 있냐'며 소리로 먹고사는 법을 묻는데 앞으로 3년 정도 지켜봐야겠지만 젊은 소리꾼들이 자신의 작품을 잘 만들어 무대에 세우도록 좋은 소리꾼을 만들어내는 꿈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판소리 완창을 하고 나면 몸무게 2~3㎏이 줄어드는 건 기본.체력 관리와 컨디션 관리가 관건이다. 김소진 씨가 "나이는 어린데 먹는 건 노인"이라며 "유자차 레몬즙 추어탕 등 몸에 좋다고 하는 것만 찾아먹는다"고 말했다. 이자람 씨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의 스케줄표를 펼쳐들며 동생들과 약속 시간을 정했다. "인사동 족탕 먹으러 가자,내일 저녁 어때?" (02)3443-2777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