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를 계기로 선진국과 이머징 국가 간 패권 다툼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머징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유럽 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IMF 기금 규모를 키우자는 입장이다. 반면 유럽 위기가 IMF 내 세력 판도를 뒤흔들 것을 우려한 서방 선진국들은 잇따라 기금 확대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으며 충돌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현지시간) "지난 주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미국과 독일,일본,캐나다 등이 '유럽 스스로 재정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잇따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IMF가 아직 사용하지 않은 재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며 IMF가 유럽 재정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는 데 반대했다.

짐 플래어티 캐나다 재무장관도 "잘 사는 나라인 유럽은 (IMF에 기대지 않고도) 위기에 대응할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가세했다.

서방 선진국들이 연이어 IMF 기금 규모 확대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IMF 추가 자금 출연을 검토하고 있는 신흥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돈이 급한 유럽 국가들도 발언권이 커진 신흥국의 간섭이 심해질 것을 우려해 IMF 기금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신흥국들은 유럽 위기를 IMF 내에서 목소리를 키우는 계기로 삼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브릭스(BRICs ·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재무장관들은 최근 성명을 통해 "IMF 등 국제기구를 통해 유로존 국가들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주광야오(朱光耀) 중국 재정부 부부장은 "IMF 기금 확대와 관련한 모든 가능한 방안들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다음달 G20 정상회의에서 신흥국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