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불신의 시대, 희망의 정치
온 세상이 불신으로 넘쳐 난다. 복지단체,시민단체,교수,종교인,분야와 직종을 가리지 않는다. 불신계의 챔피언은 단연 정치인들이다.

특임장관실의 최근 조사결과는 우리 사회 극심한 불신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 준다. 성인 응답자의 87.1%와 청소년의 85.6%가 각각 정치와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니 이러고도 나라가,정부가 존속한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박원순 변호사의 새 바람도 어느덧 불신의 블랙홀로 빠져들기 시작한 게 아닌지,상황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달 초 라디오 연설에서 글로벌 재정위기의 원인으로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 약화를 꼽았다. 맞는 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세계경제가 3년 만에 다시 위기를 맞은 것은 세계경제의 양대 축이자 중심부,자본주의의 본거지인 미국과 유럽이 동시에 재정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정부실패에 있다는 데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번 위기는 전보다 해결이 쉽지 않고 오랜 기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세계화의 결과로 한 나라의 위기가 바로 다른 나라로 전이된다는 문제의식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세계경제가 이 지경에 빠졌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세계화의 연결망을 통해 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점점 더 빠른 주기로 반복되는데,선 · 후진국을 막론하고 제 살 길 챙기기에 급급한 각국 정부에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경제난으로 가장 고통을 겪는 것은 저소득층,영세민,노동자들인데,1%가 99%의 사회 자산을 독점하는 '1 대 99의 사회'에 저항해 '점령'(occupy) 운동이 벌어졌지만,그마저도 대안이라기보다는 병리적 징후로 끝날 공산이 크니 답이 되지는 못한다. 독일을 위시한 유럽의 지식인들은 미국식 금융산업의 통제불능을 비난하며 실물 기반 없는 신용 놀음을 강력히 규제하라고 정부의 각성과 책임을 촉구하지만,시장실패가 아니라 정부실패를 탓하면서 다시 정부에 희망을 거는 것에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무엇보다도 현 정부는 도처에서 역사 이래 가장 신뢰도가 낮은 계곡을 지나는 중이다. 정부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의 역량이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이유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선진국 정부들의 협력과 공동보조를 위한 노력은 늘 난항이고 그 성공 가능성에 대한 신뢰도는 훨씬 더 낮다. 정부실패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배경으로 한 신국정관리(new public management)는 주로 시장메커니즘을 통해 정부실패를 해결하려던 시도였다.

결국 통제는커녕 책임 추궁도 어려운 무수한 정책실패를 막지 못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마치 당연직처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항시 도덕적 우월감을 누리며 시장실패와 기업의 탐욕을 질타해 왔던 것인데 이번엔 정부가 작동하지 않는 사태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문제는 그래도 정부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믿을 건 정부밖에 없다'고 하면 어용의 의심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우리가 신뢰를 두어야 할 곳이 정부 말고 또 어디 있을까. 이 불안한 현실에서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란 정녕 믿을 만한 정부를 선택하는 일,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도덕성과 역량을 갖춘 정부,시장과 의원,대통령은 누구일까.

그 마지막 옵션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그나마 남은 희망마저 포기하는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