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화, 뉴욕에 전광판 건 삼성맨…中企수출 전도사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삼성맨'이었던 제가 요즘은 '중소기업 전도사'로 불린답니다. 납품 계약을 성사시켰을 때 쾌감은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에 삼성 전광판을 올렸을 때 못지않죠."

인케(INKE · 한민족글로벌벤처네트워크) 미국 뉴저지 지부 의장을 맡고 있는 정승화 미 하이트론스(Hitrons) 대표(52 · 사진)는 "작년부터 한국 중소기업 제품 수백만달러어치를 미국에 수출하는 계약을 성사시켜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올해 미국 코스트코에 4만여대를 납품한 '아이젠 비데'가 그의 손길을 거쳐 미국 수출길에 오른 대표적인 사례다.

정 대표는 "정보기술(IT)과 생활가전 분야 중소기업 제품을 미국 유통라인에 올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금명간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하이트론스는 1년 전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민간해외지원센터'로 지정돼 국내 중소기업의 미국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그는 글로벌 현장에서 '삼성' 브랜드를 뿌리내리는 데 공을 세운 PR맨 출신이다. 1991년 제일기획 뉴욕지부 2대 법인장으로 파견돼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 삼성 전광판을 내건 주인공이다. 그가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삼성' 브랜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인이나 여행객이 꼭 들르는 타임스스퀘어 광장 전광판 거리엔 소니,모토로라 등 당시 한 세대를 풍미했던 글로벌 브랜드의 네온사인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저기서 소니를 끌어내리고 삼성 간판을 올려놓고야 말겠다'고 조용히 마음을 먹었고,뉴욕시 당국과 오랫동안 물밑 협상을 벌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지금은 한인 관광객들이 자랑스럽게 카메라에 담아오곤 하는 삼성 전광판이다. 정 대표는 이후에도 수년간 미국 전역과 중남미 · 북미 지역을 안방처럼 오가며 글로벌 무대에서 '삼성'을 알렸다.

하지만 밤낮으로 일하다 보니 몸에 탈이 났다. 결국 1997년 오랜 삼성맨 생활을 접고 휴식을 취하다 이듬해 '하이트론스'라는 간판을 내걸고 전자제품 유통업을 시작했다. 큰 조직에서 일하다 바닥부터 사업을 시작하려니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인력이 부족해 직접 제품 배달 및 설치를 하고,수리도 했다. "아저씨,거기 TV 좀 똑바로 놔줘요"라는 핀잔을 들을 때면 눈물도 났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형 유통업체들과 부지런히 몸으로 부딪히며 유통 노하우를 배웠다. 정 대표는 "10년이 흐르니 대형 유통업체 바이어 중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시장을 훤히 꿰뚫게 됐다"며 "중소기업의 애환을 이해하게 된 것도 큰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도 한 달 중 보름은 미국에서,나머지 보름은 한국에서 지내며 미국 유통망 바이어들과 국내 중소기업 사장들을 번갈아 만난다. 지난해부터 1년간 수출 상담을 위해 서류를 검토한 중소기업만 3000여개,직접 만난 중소기업 대표들은 300여명에 달한다. 비행기에서 밀린 잠을 잘 정도로 바쁜 날들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뿌듯하다고 한다. 정 대표는 "미국시장은 제품으로 경쟁하는 정직한 시장인 만큼 한번 판로만 뚫으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며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앞으로도 힘없는 중소기업들의 판로 개척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