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호적상 '사망자'로 살아오면서 절도 범죄를 반복하다 구속기소된 피고인이 법원의 적극적인 신원 확인 노력으로 호적을 회복했다.

18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관철동 길거리에서 잠든 취객의 지갑을 훔치다 체포된 이모씨(44)는 호적상 사망자,즉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출생 직후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가 가출하자 이씨는 호적상으로는 큰아버지의 아들로 신고됐다. 1992년 법적 부친인 큰아버지가 사망하자 사촌들은 연락이 닿지 않던 이씨에 대해 1994년 실종신고를 청구,법원은 1995년 실종선고 심판을 내렸고 사촌들은 같은 해 4월 사망신고를 했다.

하지만 이씨의 연락이 끊긴 이유는 이씨가 당시 절도 범죄를 저질러 1993~1995년 사이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원의 실종선고 심판 열흘 후에 출소한 이씨는 호적상 사망자의 신분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또다시 절도 범죄 행각에 빠져들어 지난 5월 기준 절도로만 전과6범이 됐다.

이씨는 호적을 살려보려 했으나 경찰,검찰,구청,법원 등 행정기관들이 책임을 미루는 한편 비용도,증명할 방법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호적상 사망자라 신분증조차 발급받을 수 없어 막노동도 할 수 없었다"는 이씨의 호소를 받아들여 공판준비기일을 5차례 속행하면서 실종 선고 취소심판 신청에 필요한 시간을 줬다. 이날 재판에서 이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