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무력화에 소송 남발…소비자는 쉽게 `굴복'
카드사는 부문별한 대출 확대로 가계건전성 손상

증권팀 = 대기업 계열 보험사와 카드사의 일감 몰아주기도 심각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는 소비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대주주의 편법 상속ㆍ증여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고객의 각종 민원을 회피하려고 민원분쟁 절차를 중단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익이 된다면 소비자에게 어떤 `경제적 고통'을 주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소비자들은 막대한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이 제기되면 쉽게 굴복하는 약점을 노린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 카드ㆍ보험도 재벌 일감 몰아주기 심각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재벌 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 현상은 카드ㆍ보험업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롯데손해보험의 계열사 적립금은 작년 5월 말 28억원에서 올해 6월 말 2천245억원으로 확대됐다.

삼성생명도 계열사 적립금 비중이 57.7%로 전체 절반을 웃돌았으며 삼성화재의 이 비중은 40.7%나 됐다.

한화손해보험은 44.0%로 절반에 육박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올해 4~9월 삼성그룹 계열사와 544억4천만원의 금융거래를 했다.

삼성전자는 개인연금으로 167억원을, 삼성화재와 에스원은 퇴직연금으로 각각 134억원, 140억원을 맡겼다.

삼성화재는 삼성전자에서 1천226억원의 재산종합보험을 유치했다.

계열사 카드로만 결제를 받거나, 계열사 카드로 구매해야 할인 혜택을 주는 사례도 있다.

삼성생명은 결제 때에 삼성카드만 받아 부당 지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삼성카드가 없는 고객은 카드 결제를 포기하거나 삼성카드를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

현대카드는 현대차의 지원으로 급성장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현대카드로 일정액 이상을 사용하면 현대차를 구매할 때 할인해주는 제도 덕분에 고속성장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정이 합법적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대기업 계열 보험사와 카드사가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본다"며 "일부 대기업 상품을 구매하거나 보험에 가입하려면 계열회사 카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지난 8월 권혁세 원장이 보험사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경고하는 등 대주주와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주시하고 있다.

◇ 불만 민원 회피용 소송 남발
보험사들이 고객 민원을 무력화하기 위해 소송을 악용하는 것도 문제다.

올해 상반기 손해보험사 상대 분쟁조정 신청이 5천879건이며 이 중 6.4%인 378건은 소송이 제기됐다.

개인이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32건에 불과하고 90% 이상이 손보사가 고객을 상대로 법적 판단을 구한 것이다.

손보사들의 이런 행동은 현행 법 체계에서 분쟁조정과 소송을 병행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고객이 분쟁조정 민원을 신청해도 회사가 소송을 제기하면 민원은 소멸하며 곧바로 소송에 응해야 한다.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개인이 기업에 맞서 소송에서 이기기는 어려워서 보험사의 요구대로 합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금융회사들이 이런 약점을 알고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며 "특별법을 만들어 분쟁조정과 소송을 병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사들이 보험료율을 담합해 소비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것도 심각하다.

공정위가 최근 생명보험시장에서 종신보험, 연금보험, 교육보험 등 개인보험상품의 이자율을 서로 미리 결정한 12개 생명보험사에 대해 3천600여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키로 함에 따라 그동안 보험사들이 해온 `은밀한 거래'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 6월에도 10개 손보사가 8개 손해보험상품의 보험료율을 공동 결정한 사실을 적발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삼성화재 118억원 등 10개 업체에 500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 중 8개사가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공정위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2008년 9월에는 14개 생명보험사와 10개 손해보험사, 농협 등이 단체보험과 퇴직보험의 보험료를 결정하거나 입찰에 참여할 때 밀약한 사실이 적발돼 265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 카드사, 신용 대출로 부실 키워
카드사들은 무분별하게 신용대출을 늘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삼성카드, 현대카드, 롯데카드, 신한카드, 하나SK카드, KB국민카드 등 6개 카드사의 대출은 지난 6월 말 현재 전체 자산의 26.99%를 차지하고 있다.

카드 대출 자산은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합한 금액이다.

카드사별로는 롯데카드의 카드 대출 비중이 33.49%로 가장 컸다.

이어 KB국민카드(32.86%), 신한카드(28.61%), 현대카드(26.06%), 삼성카드(23.88%), 하나SK카드(12.11%) 순이었다.

카드사들이 대출자들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더욱 엄격한 평가를 하고 있지만, 카드 대출 규모가 늘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지난 7월 초 카드 대출 증가율을 연 5% 이하로 제한했다.

카드 대출이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 범위를 넘어 가계 부실을 확대할 수 있다는 지적을 고려한 조치다.

카드사들은 금융당국의 규제로 카드 대출에서 제약을 받지만, 아직 그 위험을 배제할 수는 없다.

(서울=연합뉴스) k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