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공사가 유망 중소 · 중견기업이 발행하는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투자은행(IB)과 기관투자가의 참여를 유도, 성장성은 높지만 자본시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중소 · 중견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정책금융기관이 중소 · 중견기업 회사채에 집중 투자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1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정책금융공사는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인 회사채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를 준비 중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투자 기간 5년 이상,규모는 26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책금융공사가 상당액을 투자하고 IB와 기관투자가들이 나머지를 분담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투자자가 만기 전 환매할 때는 환매금액의 일정 부분을 펀드에 편입하도록 해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펀드는 신성장 분야의 중소 · 중견기업이 발행하는 일반 회사채를 집중적으로 사들일 계획이다.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주식 관련 사채에도 투자하지만 가급적 비중을 낮출 방침이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 · 중견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다.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펀드 규모와 조건이 가변적"이라고 말했다.

정책금융공사가 정크본드 투자펀드를 만들기로 한 것은 회사채 발행 시장이 양극화되고 있어서다. 최근 회사채 시장에서 투기등급 채권은 거의 소화되지 않고 있다. 투자적격등급 중에서도 A급 이상인 채권은 순조롭게 소화되는 반면 BBB급은 발행에 애로를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투기등급이 대부분인 중소 · 중견기업은 회사채 발행이 더욱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7월 말까지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 330개 중 91.2%가 투자등급이었다. 전체의 79.4%는 신용등급이 A급 이상일 정도로 회사채 시장이 편중됐다. 10년 전인 2001년 초에는 전체 회사채의 35.1%가 투기등급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투기등급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투자적격등급인 BBB급마저도 회사채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어 투기등급을 가진 중소 · 중견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신평사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채정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한국사무소 대표는 "한국 기업들은 투기등급을 살생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 상황에 맞춰 투자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S&P의 신용등급 분포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기업의 투기등급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적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