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CEO, '개발의 천재' 잡스 13년 보필한 '관리의 귀재'
스티브 잡스는 직원을 까다롭게 채용하기로 유명했다. 애플에 대한 열정이 없어 보이면 직원으로 뽑지 않았다. 고급인력을 스카우트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멍청이’라 부르며 가차 없이 해고했다. 1997년 복귀한 직후에는 1만7000여명의 인력 중 7400여명을 한꺼번에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잡스가 “내 인생 최고의 채용이었다”고 극찬한 사람도 있다. 현재 애플을 이끌고 있는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다. 잡스는 복귀 후 매각될 처지에 놓인 회사를 구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쿡을 지명했다. 쿡은 당시 PC제조업체 컴팩의 구매담당 부사장이었다.

쿡을 영입하기 위해 실시한 면접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끝났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던 것. 이후 13년간 쿡은 잡스를 도와 애플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만들었다. 잡스는 지난 8월 CEO 자리를 쿡에게 물려줬다. 잡스가 스스로 건설한 애플 제국을 통째로 맡긴 쿡의 핵심 경쟁력은 무엇일까.

◆“낙농업처럼 신선도를 유지하라”

쿡은 1983년부터 1994년까지 IBM에서 근무했다. 전문 분야는 구매였다. 효율적 구매를 통한 원가 절감은 PC사업의 핵심 경쟁력이었다. 쿡은 그 뒤 인텔리전트일렉트로닉스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1997년 컴팩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6년간 정보기술(IT)업체에서 근무한 그가 얻은 명성은 ‘재고 관리와 부품 조달 부문의 최고 실력자’였다.

잡스는 쿡을 수석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맡긴 업무는 재고 관리와 수요 예측 등이었다. 쿡은 전 직원들 앞에서 “재고는 악(惡)과 같다”고 선언했다. 또 “낙농업을 하는 것처럼 애플 제품은 신선도를 유지해야 한다”며 공격적으로 재고를 줄여가기 시작했다. 재고뿐 아니라 구매 프로세스에도 메스를 들이댔다. 100여개에 달하던 부품 공급업체 수를 20개로 줄였다. 협력업체는 철저한 경쟁력 점검을 통해 선별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던 조달 네트워크도 아일랜드와 중국,싱가포르 등 3개 거점을 중심으로 재구축했다. 물류비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쿡의 구매 프로세스 혁신은 2000년대 애플이 독보적 경쟁력을 갖추는 기반이 됐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다른 기업들이 따라올 수 없는 가격으로 만든 것이다.

그의 철저한 관리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70일치 넘게 쌓여 있던 상품 재고는 2년 만에 10일치로 감소했다. 구매비용도 큰 폭으로 줄었다. 쿡이 ‘경영 관리의 천재’로 불리는 이유다. 잡스가 그를 영입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잡스의 능력은 금세기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기업의 경영관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잡스는 자신을 대신해 애플의 안살림을 맡아줄 인재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쿡은 수요 예측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2005년 아이팟나노를 출시하기 전 일이다. 쿡이 갑자기 반도체 중 낸드플래시 물량 확보에 나섰다. 낸드는 일반 D램과 달리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남아 있는 게 장점이다. 애플은 아이팟나노 이전 모델에는 하드디스크(일반 D램) 방식을 사용했다.

물량 확보를 위해 쿡은 선불결제를 도입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등 공급업체에 12억5000만달러를 선불로 지급한 것.

그는 아이팟나노는 대용량의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요가 막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선불결제를 통해 낮은 가격에 낸드를 구입했다. 그것도 2010년까지 제품을 만들 플래시 메모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이팟나노는 출시 뒤 지난해까지 MP3부문을 석권했다.

능력을 인정받은 쿡은 2007년 COO로 승진했다. 쿡은 잡스가 자리를 비우면 업무의 대부분을 관장했다. 잡스가 2004년과 2009년 휴직했을 때,올해 세 번째 병가를 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포브스는 잡스의 사임 직후 “쿡이 사임해 경쟁사로 갔다면 잡스가 사임했을 때보다 주가가 더 큰 폭으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작년 9월 쿡이 휴렛팩커드의 CEO로 영입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자 애플 주가는 6% 하락하기도 했다.

◆잡스와는 다른 카리스마

앨라배마주 출신인 쿡의 별명은 ‘남부 신사’다. 특유의 남부 사투리로 항상 공손하게 얘기해 붙여진 별명이다. 말투뿐 아니라 성격도 차분하고 꼼꼼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잡스는 독단적이고 변덕스러운 반면 쿡은 조용하고 치밀하다”고 분석했다. 관리자로는 적격인 성격을 갖고 있다. 평소 잡스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다.

그러나 회의만 시작하면 돌변한다.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 공세를 펼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10개의 질문을 해 답변이 모두 마음에 들면 다음엔 질문이 9개로 줄어든다. 그러나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질문 수는 2~3배로 늘어난다. 애플의 전 간부는 “사람을 완전히 밟아버리는 수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직원들이 그를 싫어하거나 피하지는 않는다고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은 전했다. 일에 대한 그의 집념을 직원들이 이해하는 것이다.

업무 추진력은 그의 또 다른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애플의 전 임원이었던 사비 칸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글로벌 유통 네트워크에 대한 회의 도중 쿡이 “아시아 쪽 상황이 특히 안 좋다. 누군가 중국에 가줘야겠어”라고 말했다. 회의가 30분 정도 더 진행됐을 즈음 쿡은 칸을 쳐다봤다. 그리고 “아니,당신은 왜 아직까지 여기에 있지”라고 다그쳤다. 칸은 그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 공항으로 달려갔다. 옷도 챙기지 못하고 돌아올 날짜도 전혀 정해지지 않은 중국 출장길에 올랐다.

쿡의 일에 대한 집착은 ‘워커홀릭’ 형태로 나타난다. 그는 매일 새벽 4시30분에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한다. 크리스마스와 새해에도 자원해 공장에서 일한다. 애플 임원 중 한 명인 마이크 제인스는 “쿡은 작년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에서 18시간 동안 동료들과 말도 거의 하지 않은 채 회의 자료만 보고 있었다”며 “도착해서는 샤워만 하고 현지 법인으로 가 12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고 전했다.

평소에도 그는 ‘마라톤 회의’를 즐긴다. 제인스는 “쿡이 오후에 회의를 갑자기 소집한 날이 있었다”며 “그날 직원들은 야구 경기 표를 사뒀었는데, 회의를 지나치게 길게 해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인스는 또 “모두가 학생들처럼 시계만 쳐다봤지만 그는 평소에 즐겨먹는 에너지바 포장을 뜯으면서 ‘좋아,그 다음 페이지’를 외치며 오랜 시간 동안 회의를 이어갔다”고 덧붙였다.

◆“홈런을 치고 싶다면 직감을 믿어라”

잡스가 없는 애플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쿡은 이성적이고 치밀하지만, 잡스처럼 ‘직관’을 중시하지 않고 계산만 한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쿡이 걸어온 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면이 보인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잡스는 5분 만에 쿡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쿡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쿡이 일하던 컴팩은 애플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PC 회사였다. 컴팩에서 일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이직에 부담이 컸다. 주변에서는 모두 “애플이 망할 것”이라며 뜯어 말렸다. 그러나 쿡은 자신의 ‘감(感)’을 믿고 애플로 옮겼다.

쿡은 지난해 모교인 오번대 졸업식 연설에서 “당시의 애플은 지금과 전혀 다른 회사였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물론 아이팟조차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러나 신중함과 논리 따위는 버리고 창조적인 천재와 일할 절호의 기회라는 직감에 모든 것을 맡겼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미래를 계획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간혹 홈런을 치고 싶다면 예측 가능한 인생만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때로는 자신을 이끄는 직감을 중시해야 할 때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직감이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자신을 철저히 훈련시켜야 한다고도 충고한다. 쿡은 “비즈니스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승패 대부분이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결정돼 있다”며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때에 대비해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