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2세가 뛴다] (129) 아미실업, 손발 척척 父子…'빠르게' 대신 '바르게' 의료보조기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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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 아버지
소재·마감처리 품질로 승부…관절보호대 '명품' 입소문
주경야독 아들
목사 꿈 접고 경영대학원 진학…업무·교육매뉴얼 직접 만들어
소재·마감처리 품질로 승부…관절보호대 '명품' 입소문
주경야독 아들
목사 꿈 접고 경영대학원 진학…업무·교육매뉴얼 직접 만들어
'빠르게 만드는 게 바른가,바르게 만드는 게 빠른가. '
부산 장림동의 의료보조기구 제조업체 아미실업의 생산 공장 한 쪽 벽에는 이런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류실근 대표(56)가 늘 입이 닳도록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들 류민혁 실장(28)은 "'품을 좀 더 들이더라도 물건은 가장 바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철학 덕분에 직원들 모두 장인정신으로 제품을 만든다"며 "창업주인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이 마음가짐이 작은 제조업을 잘 꾸려온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류 대표의 선친이 1965년 세운 이 회사는 기간으로는 50여년,3대째 정형 보조기기 분야 한 길을 걸어온 기업이다.
류 대표는 1983년 목발 제조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으로 운명을 달리하면서 덜컥 회사를 맡았다. 남겨진 공장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목발이 유일한 제조 품목인 데다 종업원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그만두고 취직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손으로 정성스레 나무를 깎던 아버지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다. 류 대표는 "아버지는 장안에 입소문이 난'장인'이었다"고 회상했다.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리다
이때만 해도 4개월 된 갓난아기(류 실장)는 옆에서 울고만 있었다. 류 대표는 낮엔 아내에게 공장을 맡기고 자신은 영업전선을 뛰어다녔다. 밤에는 공장으로 돌아와 목발 만들기를 수년.몇 년을 숨돌릴 틈 없이 일한 덕분에 종업원이 어느새 7명으로 늘었다. 공장도 11평 규모에서 70평짜리로 넓혀 옮겼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싸고 만들기 쉬운 알루미늄 목발이 등장하면서 나무 목발 제조는 사양길로 들어섰다. 류 대표는 관절보호대 등 새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1993년부터 '닥터메드'(Dr.Med)라는 브랜드를 론칭,허리 · 무릎 보호대 등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특유의 꼼꼼함과 장인정신은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6개월 무상 반품제를 시행할 정도로 소재,마감 등 품질에 자신이 있었고 자연스레 '명품 브랜드'로 입소문을 탔다.
◆"100년 기업 만들 것"
장남인 류 실장이 가업에 뛰어든 것은 2008년.당시만 해도 목사의 꿈을 꾸며 신학 공부를 하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가업을 이으려 의공학과에 진학한 동생이 갑자기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유학길에 오르는 바람에 한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몇날 밤을 고민하던 류 실장은 아버지가 그랬듯 미련없이 승계를 택했다.
류 실장은 요즘 회사를 바꾸는 데 누구보다 공을 쏟는다. 류 대표는 "아들이 벌써 사원 교육 시스템을 기획하고 직접 업무 매뉴얼까지 만들었다"며 "요즘엔 정보기술(IT) 융합 상품 같은 고부가가치 아이템 계획을 내놓는 등 사업 제안도 많이 한다"며 흐뭇해 했다. 지난달 부산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류 실장은 잠자는 시간이 고작 서너 시간밖에 없을 정도로 몸은 힘들지만 회사를 더 튼튼히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뿌듯하다고 한다.
"아미실업은 '빠르진' 않았지만,'바르게' 걸어오며 3대를 이어온 회사예요. 그 정신 그대로 100년 가는 기업으로 키울 것입니다. "
부산=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부산 장림동의 의료보조기구 제조업체 아미실업의 생산 공장 한 쪽 벽에는 이런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류실근 대표(56)가 늘 입이 닳도록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들 류민혁 실장(28)은 "'품을 좀 더 들이더라도 물건은 가장 바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철학 덕분에 직원들 모두 장인정신으로 제품을 만든다"며 "창업주인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이 마음가짐이 작은 제조업을 잘 꾸려온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류 대표의 선친이 1965년 세운 이 회사는 기간으로는 50여년,3대째 정형 보조기기 분야 한 길을 걸어온 기업이다.
류 대표는 1983년 목발 제조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으로 운명을 달리하면서 덜컥 회사를 맡았다. 남겨진 공장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목발이 유일한 제조 품목인 데다 종업원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그만두고 취직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손으로 정성스레 나무를 깎던 아버지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다. 류 대표는 "아버지는 장안에 입소문이 난'장인'이었다"고 회상했다.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리다
이때만 해도 4개월 된 갓난아기(류 실장)는 옆에서 울고만 있었다. 류 대표는 낮엔 아내에게 공장을 맡기고 자신은 영업전선을 뛰어다녔다. 밤에는 공장으로 돌아와 목발 만들기를 수년.몇 년을 숨돌릴 틈 없이 일한 덕분에 종업원이 어느새 7명으로 늘었다. 공장도 11평 규모에서 70평짜리로 넓혀 옮겼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싸고 만들기 쉬운 알루미늄 목발이 등장하면서 나무 목발 제조는 사양길로 들어섰다. 류 대표는 관절보호대 등 새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1993년부터 '닥터메드'(Dr.Med)라는 브랜드를 론칭,허리 · 무릎 보호대 등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특유의 꼼꼼함과 장인정신은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6개월 무상 반품제를 시행할 정도로 소재,마감 등 품질에 자신이 있었고 자연스레 '명품 브랜드'로 입소문을 탔다.
◆"100년 기업 만들 것"
장남인 류 실장이 가업에 뛰어든 것은 2008년.당시만 해도 목사의 꿈을 꾸며 신학 공부를 하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가업을 이으려 의공학과에 진학한 동생이 갑자기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유학길에 오르는 바람에 한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몇날 밤을 고민하던 류 실장은 아버지가 그랬듯 미련없이 승계를 택했다.
류 실장은 요즘 회사를 바꾸는 데 누구보다 공을 쏟는다. 류 대표는 "아들이 벌써 사원 교육 시스템을 기획하고 직접 업무 매뉴얼까지 만들었다"며 "요즘엔 정보기술(IT) 융합 상품 같은 고부가가치 아이템 계획을 내놓는 등 사업 제안도 많이 한다"며 흐뭇해 했다. 지난달 부산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류 실장은 잠자는 시간이 고작 서너 시간밖에 없을 정도로 몸은 힘들지만 회사를 더 튼튼히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뿌듯하다고 한다.
"아미실업은 '빠르진' 않았지만,'바르게' 걸어오며 3대를 이어온 회사예요. 그 정신 그대로 100년 가는 기업으로 키울 것입니다. "
부산=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