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KIC) 돈을 쌈짓돈쯤으로 여기고 있다. 국민들의 노후 대비 자금인 국민연금을 동원해 농협 구조개편에 따른 자본 부족분을 메우려 하고 있고,KIC 운영에 시시콜콜 간섭하면서 거액의 손실을 만들어놓는 것이 바로 정부다. 관료들의 발상이 이런 식이라면 연금 고갈 시기는 더 당겨질 수밖에 없다. 외환보유액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국가자산을 증식하고 금융산업 발전을 선도한다는 명분 아래 만든 KIC는 투자 손실을 면치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국민연금으로 농협을 우회 지원하는 문제는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 3월 농협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국회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농협의 부족 자본금 6조원을 전액 지원키로 약속했다가 4조원만 주기로 말을 바꾸면서 시작된 문제다. 내년 3월까지 신용 · 경제부문을 분리해야 하는 농협이 부족분을 3조원의 농업금융채권(농금채)을 국민연금에 떠안기는 방식으로 메운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이자가 연 3~4%에 불과한 농금채에 투자할 경우 운용수익률 저하는 불보듯 뻔하다. 이는 다름 아닌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배임이요 직권남용이며 이자 차액을 횡령하는 것과 같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투자했다 거액의 손실을 본 KIC도 마찬가지다. 이런 통 큰 투자를 KIC 단독으로 결정했을 리 만무하다. 메릴린치 투자를 종용하고 세금으로 메워야 할 나랏빚인 외평기금으로 돈까지 대준 게 당시 기획재정부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KIC는 메릴린치 투자로 무려 12억6000만달러(62.8%)를 손해봤고,설립 이래 4년간 주식투자에서 원금 2.76%를 까먹었다. 재정부의 과도한 간섭에다 정치적 목적의 투자가 많다면 백전백패다. 하지만 손실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KIC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재정부는 꿀먹은 벙어리다.

KIC는 재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한국은행과의 알력 끝에 어거지로 만든 기관이다. 국가자산을 증식하기는커녕 까먹고 있지만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관료들이 이렇게 제멋대로 국민 재산을 침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