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 미소에 반해 얼굴만 50년 새겼죠"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처럼 온화하고 사려깊은 한국인의 참모습을 담아내고 싶지만 예술에는 완성이 없어요. 그게 바로 예술가의 비애죠.한국적인 것의 진짜 힘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팔순을 앞둔 지금에야 희미하게나마 그게 느껴집니다. "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한국 현대조각 1세대 작가 최종태 씨(79).그는 "범을 찾으러 온 사방을 다녔는데 범은 울타리 안에 있더라는 말처럼 한국적인 것을 50년간 찾아다녔지만 최근 내 가슴 안에서 그걸 봤다"고 말했다.

예술원 회원인 최씨는 조형예술 반세기 동안 '얼굴'이라는 한 소재만을 탐구해온 작가다. 대전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1953년 '문화세계'에 실린 김종영 씨의 조각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망'을 보고 자극받아 이듬해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입학했다. 당시 추상 조각이 유행했지만 그는 인물 조각에 매달렸다.

'구원의 모상(母像)'이라는 전시 제목이 말해주듯 이번 개인전에서도 얼굴을 주제로 한 채색 목조각을 비롯해 브론즈 돌조각,묵화,수채화,파스텔화 등 60여점으로 가나아트갤러리 전관을 가득 메웠다.

작품은 예전과 달리 밝고 환해졌다. 빨강 초록 노랑 등 오방색의 채색 목조각을 대거 출품했다. 가슴에 손을 모은 소녀상에서는 생동감과 명상적인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여인상 중에서도 소녀상만 만들었죠.1965년 국립박물관에서 본 반가사유상에 '필'이 꽂혔거든요. 정말 좋은 작품이란 어느 한곳에도 지나친 힘이 들어 있지 않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그의 작품에선 종교적 감성도 묻어난다. 그는 "종교를 근간으로 하는 중세나 이집트의 단순한 미를 추구하면서도 한국 고유 불상이나 목각,석인상의 조형적 특징을 간파해 나만의 예술세계로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제대로 작품 활동을 하려면 이론적 토대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혼자 동서양 미술사를 연구하며 세계 곳곳을 누볐다. "민족적 자존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서구권의 예술을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아시아에서 극동지역,아프리카와 남미,유럽의 문화까지 샅샅이 뒤졌죠."

그동안 입상에 공을 들였지만 최근에는 좌상과 채색 작품도 병행하고 있다. 회화의 선적인 요소를 강조한 채색 목조각은 풍부한 양감을 느끼게 한다. 작품 밑에 깔린 두툼한 나무 좌대도 눈길을 끈다. "얼굴 작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거죠.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얼굴들이 조금씩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동그란 눈,틀어올리거나 파마한 듯한 머리,날씬하게 뻗은 콧날 등의 곡선이 긴장을 완화시킨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글쓰기에도 능한 그는 지난 8월 자신의 예술과 신앙에 관한 에세이집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을 출간했다. 내달 13일까지 서울 전시가 끝나면 대구 대백프라자와 수성아트피아에서 전시를 이어간다. (02)720-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