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처럼 먹고 자고 생각하고…'미스터리 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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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 경찰팀 리포트
미제사건 해결사 '프로파일러'
수건이 왜 수도꼭지에?
범행 사진·관련 기록 이 잡듯 샅샅이 뒤져…사건의 수사방향 제시
심리 방어막을 깨라
용의자 심문에 참여…사소한 행동·습관 분석, 빈틈 찾아 자백 유도
정예요원 고작 38명
심리·사회학 석박사 학위…보람 있지만 스트레스 심해
미제사건 해결사 '프로파일러'
수건이 왜 수도꼭지에?
범행 사진·관련 기록 이 잡듯 샅샅이 뒤져…사건의 수사방향 제시
심리 방어막을 깨라
용의자 심문에 참여…사소한 행동·습관 분석, 빈틈 찾아 자백 유도
정예요원 고작 38명
심리·사회학 석박사 학위…보람 있지만 스트레스 심해
지난 8월16일 밤 경기 부천시 약대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여대생 김모씨(21)가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김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뒤 달아났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 주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찍힌 김모씨(31)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CCTV 화면에는 용의자 김씨가 범행 전 20여분 동안 휴대폰을 쳐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장면이 잡혔다. 김씨가 3년 전 피해자의 집과 불과 20여m 떨어진 곳에 살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를 바탕으로 용의자 김씨가 피해자를 잘 알고 지내던 면식범이라고 판단한 경찰은 피해자 김씨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일일이 얼굴을 대조하며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용의자 김씨는 수사망에 좀체 걸려들지 않았다.
이때 고준채 경기지방경찰청 행동과학팀장(34 · 경장)은 여러 정황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묻지마 범죄'일 가능성을 조심스레 들고 나왔다. 수사에 혼선을 겪던 수사팀은 과학팀의 제안을 바탕으로 수사방향을 비면식범으로 잡고 재수사에 나섰다. 우선 사고현장으로 들어오는 입구 주변에 설치된 CCTV에서 용의자를 확인한 뒤 꼬리 물기식으로 수천개의 CCTV를 확인해나간 결과 사건현장에서 13㎞ 이상 떨어진 서울 목동에 살던 용의자를 사건 발생 나흘 만에 체포했다. 수사팀은 지난해 이혼한 김씨가 사회에 불만을 품고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밝혀냈다.
프로파일링(profiling · 범인 유형 분석)은 장기 미제나 연쇄 살인사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사 기법이다. 뚜렷한 범행 동기나 피해자와 범인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속칭 '묻지마 범죄'로 불리는 '무동기(이상동기) 범죄'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 이럴 때 유용한 수사기법이 프로파일링이다. 범죄 현장의 조그만 흔적과 범행 수법만으로 범인의 성격과 성장 배경,생활환경,심리 상태,직업 등을 짚어내는 것이 프로파일러들의 몫이다. 유영철(2004년)과 정남규(2006년),강호순(2009년),김길태(2010년) 사건 등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대부분이 이들 프로파일러의 손을 거쳐 실마리가 풀렸다.
◆피말리는 범죄의 재구성
"이게 혈흔인가? 족적은? 칫솔 봉지는 있는데 칫솔은 어디로 간 거야?" "증거를 없애려고 범인이 가져간 것 같아요. "
21일 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행동분석팀 회의실.권일용 경위,김성환 경장,정미경 행정관등 3명의 프로파일러가 벌써 몇 시간째 벽면에 붙은 사건 흐름도와 사진을 들여다보며 묻고 답한다. "동선을 보니 계획된 살인은 아닌데…." "수건은 왜 수도꼭지 위에 있을까?" 범인의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잡아내려고 안간힘이다. 최근 서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었다. 현장 사진과 관련 기록을 이 잡듯 뒤진다. 슬리퍼의 위치,수건의 흐트러짐도 놓치지 않는다. 범인이 붙잡혔다고 끝난 게 아니다. 용의자 면담이 이어진다. 면담을 통해 프로파일러는 범인의 성격과 행동 유형을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한다.
◆고도의 심리전…'심리적 방어막을 깨라'
용의자가 잡히면 프로파일러는 용의자 인터뷰,범죄행동 분석,성장배경 파악에 나선다. 물증이나 범행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강력사건에서 프로파일러는 수사를 진행하는 형사를 보조해 이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 겉으로는 보조자 임무지만 결정적인 수사방향을 잡아내는 주연 역할을 한다.
지난해 김길태 사건에서 담당 형사들이 그 입을 열기 위해 강하게 압박을 가하는 동안 프로파일러들은 그의 심적 반응을 면밀히 기록했다. 이어 김길태가 한숨을 고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긴장과 경계의 벽을 허물었다. 피의자의 '심리적 방어막'을 해제하는 과정이었다. 자백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거짓말탐지기와 뇌파검사 투입 시기 역시 프로파일러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정예요원 국내 38명뿐…인력지원 절실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이 1978년 도입한 프로파일링은 미국에선 관련 드라마를 쏟아낼 만큼 정착됐다. 국내에선 2002년 2월 서울경찰청이 감식계를 과학수사계로 개편하고 과학수사계에 범죄행동분석팀을 설치하면서부터 프로파일링 수사 기법을 도입했다.
이후 경찰청은 유영철 연쇄 살인사건 직후인 2005~2007년 심리 · 사회학 석 · 박사 위주로 범죄분석요원 40명을 선발했다. 이 중 2명은 개인적인 이유로 경찰을 떠나 학계로 돌아갔다. "사체가 널린 현장에 가야 하고 흉악범들 면담도 해야 해요. 심적 스트레스가 상당한 직업이에요. 꿈을 갖고 왔다가 조직이나 근무상황 등이 안 맞아 떠나는 경우가 있어요. " 권 경위의 설명이다.
범죄분석요원 38명은 서울 · 경기지방경찰청에 각각 4명,나머지 지방청에 1~2명씩 배치됐다. 이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다가 대형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권역별로 모여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린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기약 없이 밤을 새우기 일쑤다.
경찰청이 꼽은 1999년 이후 장기 미제사건은 20건.미제사건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2006년 이후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실종자도 12만명을 훌쩍 넘었다. 일감이 널렸지만 범죄분석요원이 모자라 장기 미제사건 중 몇 건만 겨우 수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 프로파일링(Profiling)
범죄 현장에 남은 미세한 증거와 용의자의 성장 배경을 분석해 범인의 연령 · 성격 · 직업 · 교육수준을 추정해내는 수사 기법.제임스 브러셀 정신분석학자가 1950년대 뉴욕 연쇄폭발사건 범인을 '아버지를 증오하는 이민 2세,뚱뚱한 중년 독신남'으로 맞혀낸 것이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1972년 연방수사국(FBI) 행동과학부가 신설되면서부터 수사 기법으로 자리잡았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이를 바탕으로 용의자 김씨가 피해자를 잘 알고 지내던 면식범이라고 판단한 경찰은 피해자 김씨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일일이 얼굴을 대조하며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용의자 김씨는 수사망에 좀체 걸려들지 않았다.
이때 고준채 경기지방경찰청 행동과학팀장(34 · 경장)은 여러 정황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묻지마 범죄'일 가능성을 조심스레 들고 나왔다. 수사에 혼선을 겪던 수사팀은 과학팀의 제안을 바탕으로 수사방향을 비면식범으로 잡고 재수사에 나섰다. 우선 사고현장으로 들어오는 입구 주변에 설치된 CCTV에서 용의자를 확인한 뒤 꼬리 물기식으로 수천개의 CCTV를 확인해나간 결과 사건현장에서 13㎞ 이상 떨어진 서울 목동에 살던 용의자를 사건 발생 나흘 만에 체포했다. 수사팀은 지난해 이혼한 김씨가 사회에 불만을 품고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밝혀냈다.
프로파일링(profiling · 범인 유형 분석)은 장기 미제나 연쇄 살인사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사 기법이다. 뚜렷한 범행 동기나 피해자와 범인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속칭 '묻지마 범죄'로 불리는 '무동기(이상동기) 범죄'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 이럴 때 유용한 수사기법이 프로파일링이다. 범죄 현장의 조그만 흔적과 범행 수법만으로 범인의 성격과 성장 배경,생활환경,심리 상태,직업 등을 짚어내는 것이 프로파일러들의 몫이다. 유영철(2004년)과 정남규(2006년),강호순(2009년),김길태(2010년) 사건 등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대부분이 이들 프로파일러의 손을 거쳐 실마리가 풀렸다.
◆피말리는 범죄의 재구성
"이게 혈흔인가? 족적은? 칫솔 봉지는 있는데 칫솔은 어디로 간 거야?" "증거를 없애려고 범인이 가져간 것 같아요. "
21일 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행동분석팀 회의실.권일용 경위,김성환 경장,정미경 행정관등 3명의 프로파일러가 벌써 몇 시간째 벽면에 붙은 사건 흐름도와 사진을 들여다보며 묻고 답한다. "동선을 보니 계획된 살인은 아닌데…." "수건은 왜 수도꼭지 위에 있을까?" 범인의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잡아내려고 안간힘이다. 최근 서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었다. 현장 사진과 관련 기록을 이 잡듯 뒤진다. 슬리퍼의 위치,수건의 흐트러짐도 놓치지 않는다. 범인이 붙잡혔다고 끝난 게 아니다. 용의자 면담이 이어진다. 면담을 통해 프로파일러는 범인의 성격과 행동 유형을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한다.
◆고도의 심리전…'심리적 방어막을 깨라'
용의자가 잡히면 프로파일러는 용의자 인터뷰,범죄행동 분석,성장배경 파악에 나선다. 물증이나 범행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강력사건에서 프로파일러는 수사를 진행하는 형사를 보조해 이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 겉으로는 보조자 임무지만 결정적인 수사방향을 잡아내는 주연 역할을 한다.
지난해 김길태 사건에서 담당 형사들이 그 입을 열기 위해 강하게 압박을 가하는 동안 프로파일러들은 그의 심적 반응을 면밀히 기록했다. 이어 김길태가 한숨을 고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긴장과 경계의 벽을 허물었다. 피의자의 '심리적 방어막'을 해제하는 과정이었다. 자백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거짓말탐지기와 뇌파검사 투입 시기 역시 프로파일러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정예요원 국내 38명뿐…인력지원 절실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이 1978년 도입한 프로파일링은 미국에선 관련 드라마를 쏟아낼 만큼 정착됐다. 국내에선 2002년 2월 서울경찰청이 감식계를 과학수사계로 개편하고 과학수사계에 범죄행동분석팀을 설치하면서부터 프로파일링 수사 기법을 도입했다.
이후 경찰청은 유영철 연쇄 살인사건 직후인 2005~2007년 심리 · 사회학 석 · 박사 위주로 범죄분석요원 40명을 선발했다. 이 중 2명은 개인적인 이유로 경찰을 떠나 학계로 돌아갔다. "사체가 널린 현장에 가야 하고 흉악범들 면담도 해야 해요. 심적 스트레스가 상당한 직업이에요. 꿈을 갖고 왔다가 조직이나 근무상황 등이 안 맞아 떠나는 경우가 있어요. " 권 경위의 설명이다.
범죄분석요원 38명은 서울 · 경기지방경찰청에 각각 4명,나머지 지방청에 1~2명씩 배치됐다. 이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다가 대형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권역별로 모여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린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기약 없이 밤을 새우기 일쑤다.
경찰청이 꼽은 1999년 이후 장기 미제사건은 20건.미제사건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2006년 이후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실종자도 12만명을 훌쩍 넘었다. 일감이 널렸지만 범죄분석요원이 모자라 장기 미제사건 중 몇 건만 겨우 수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 프로파일링(Profiling)
범죄 현장에 남은 미세한 증거와 용의자의 성장 배경을 분석해 범인의 연령 · 성격 · 직업 · 교육수준을 추정해내는 수사 기법.제임스 브러셀 정신분석학자가 1950년대 뉴욕 연쇄폭발사건 범인을 '아버지를 증오하는 이민 2세,뚱뚱한 중년 독신남'으로 맞혀낸 것이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1972년 연방수사국(FBI) 행동과학부가 신설되면서부터 수사 기법으로 자리잡았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