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상원의원들의 사무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미국 워싱턴 의사당 옆 하트빌딩 2층.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불룩한 서류가방을 든 다섯 명의 사람들이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의원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 명은 사무실 소파에서 루비오 의원과 면담할 차례를 기다렸다. 문 밖에 서서 기다리던 다른 두 명은 자신들이 로비스트임을 숨기지 않았다.

플로리다주가 지역구인 루비오 의원은 상업 · 과학 · 교통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중간선거 때 연방의회에 입성한 초선이지만 하루에도 수십명의 로비스트들이 방문한다는 게 의원실 측의 귀띔이었다. 상 · 하원의 다른 의원들 사무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미국식 풍경이다.

◆의회를 앞마당처럼 누벼

"FTA 美의회 통과 빨리 좀…" 한덕수도 'K스트리트'로 갔다
미국 연방정부가 새 정책을 많이 만들고 의회 입법과정을 많이 거칠수록 워싱턴 로비스트들은 대목을 맞는다. 입법 내용에 이해관계가 걸린 각종 이익단체와 기업들이 로비스트를 동원해 입김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서만 1차 경기부양법,의료보험개혁법,금융감독개혁법이 줄줄이 도입됐다.

로비스트들이 몰리는 대형 일감이 최근에 하나 더 생겼다. 여야 의원 총 12명으로 구성된 재정적자감축위원회(일명 슈퍼위원회)가 11월 말까지 연방정부의 지출 삭감안을 마련해 내놔야 한다. 지출 삭감으로 정부사업 수주에 영향을 받는 기업들은 로비에 기대고 있다.

로비 전문회사 웩슬러 앤드 워커의 잭 하워드 로비스트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그는 "의원들이 표결하러 갈 때마다 복도에서 만나며,의원들의 아침 점심 저녁식사 자리는 물론 다른 행사장에서도 만난다"고 말했다. 홀랜드 앤드 나이트의 파트너 로비스트인 리치 골드는 "슈퍼위원회 위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의원들을 만나느라 정신이 없다"고 전했다.

◆불황 안 타는 제3의 산업

뉴욕의 금융산업은 '월스트리트',디트로이트의 자동차산업 등 제조산업은 '메인스트리트'라고 일컫는다. 수도인 워싱턴에서 전개되는 로비활동의 규모는 로비산업으로 불릴 정도여서 'K스트리트'라고 불린다. 로비회사들이 워싱턴 K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포진한 데서 따온 표현이다.

2004년 출범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계의 최강자로 자리잡은 신세대 기업 페이스북.2007년부터 워싱턴 로비스트를 고용하더니 올해에만 로비활동에 55만달러를 사용했다. 지난해 35만1000달러를 훨씬 웃돌았다. 한국 정부가 2006년부터 올해까지 미 의회의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위해 로비업체와 맺은 계약 규모도 630만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로비 감시 비영리단체인 센터 포 리스폰시스 폴리틱스에 따르면 경기가 침체한 가운데서도 지난해 이익단체와 기업들이 로비에 지출한 금액은 전년(34억9000만달러)보다 많은 35억1000만달러(4조원)에 달했다. 2000년 15억6000만달러의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미 법무부에 등록돼 있는 로비스트는 올해 현재 1만1726명.상원의원(100명),하원의원(435명)과 의원 보좌관 등 의회 직원을 합한 1만4000명과 맞먹는 숫자다.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

"FTA 美의회 통과 빨리 좀…" 한덕수도 'K스트리트'로 갔다
로비스트군에서 가장 막강한 배경을 가진 사람은 연방의원 출신이다. 연방의원을 지내다가 로비스트로 변신한 인사들은 294명으로 추정된다. 선거에서 낙선했거나 은퇴한 의원들이 로비업계와 기업 로비스트로 옮긴다. 웩슬러 앤드 워커의 로버트 크레이머 회장은 16년 동안 앨라배마주 하원의원을 지낸 뒤 2009년 로비업계로 진출했다. 의원 시절 의회 계간지가 선정한 '가장 유능한 의원 50명'에 포함된 적이 있어 로비스트로서 영향력도 상당하다.

로비업계와 기업들은 연방의회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의원 보좌관들도 앞다퉈 영입한다. 로비 감시 기구인 레지스톰은 지난 10년간 5000명 이상의 의원 보좌관이 로비업계로 이동했다고 추정했다. 의원 보좌관을 지내다가 2000년 제약업계 로비스트로 옮긴 피터 루빈.2008년 다시 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던 그는 최근 제약업계 로비스트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루빈은 "회전문은 한 번만 회전하는 게 아니다"며 "로비업계와 의회를 자주 옮겨다닐수록 몸값이 높아진다"고 전했다.

◆외국 정부도 로비스트 활용

한국은 로비가 불법이지만 미국에선 의회 로비 없인 사업하기가 어렵다. 미 의회와 정부를 상대해야 하는 외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미 의회의 조속한 한 · 미 FTA 비준을 위해 워싱턴의 로비회사 중 1,2위를 다투는 애킨 검프와 패턴 보그 등 4개사를 고용했다.

한덕수 주미대사는 FTA가 비준된 뒤 "자문회사를 고용해 활용한 효과가 충분히 있었다"고 털어놨다. 로비에 대한 한국 내 부정적 인식을 의식한 그는 로비활동을 자문,로비회사를 자문회사로 고쳐 불렀다. 한 대사는 "자문업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자문은 불가피하게 지불해야 할 코스트(비용)"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면 로비에 대한 투자는 계속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