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배교자가 꿈꾼 진화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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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씨 새 장편 '흑산' 출간
소설가 김훈 씨(63 · 사진)가 새 장편소설 《흑산(黑山)》(학고재)을 들고 돌아왔다. 《남한산성》 이후 4년 만의 역사소설이다.
《흑산》은 조선후기 신유박해(1801년)와 병인양요(1866년) 사이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지식인과 백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천주교 순교 성지인 절두산 절벽을 보면서 작품을 구상했다는 그는 특유의 단문으로 당시 사회상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소설은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로 순교한 황사영의 삶과 죽음이 한 축을 이룬다. 다른 축은 조정과 양반 지식인,하급 관원,마부,어부,노비 등 여러 계층의 삶이다.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은 한때 세상 너머를 엿보며 천주교에 입교했지만 흑산도로 유배돼 어류 생태연구서 '자산어보' 등을 남기고 쓸쓸히 생을 마친다. 김씨는 "유배지에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가치 중립적 세계에 인간의 구원이 있을까 고민하는 유배된 유자(儒者)의 삶과 꿈,희망과 좌절을 그렸다"며 "그의 생애를 생각하면서 느낀 기막힌 슬픔이 소설 군데군데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20명이 넘는다. 뚜렷한 주인공은 없다고 했다. 그는 "인간 현실에서는 어차피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에 정약전의 주인공 자리를 박탈했다"며 "앞으로도 소설에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지난 4월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들어갔고,칩거 5개월 만에 원고지 1135매 분량으로 탈고했다. 책의 속표지에는 직접 그린 기묘한 그림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가고가리'라고 이름지은 생명체가 흑산도를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다. 새,배,물고기,말 등을 합성한 것으로 진화의 공간을 향해 나아가는 생명체라고 설명했다.
"수억만년의 시공을 건너가면서 자연에서 전개된 생명의 장엄한 흐름이 정약전과 황사영,순교자와 배교자 등이 꿈꿨던 도덕과 자유,사랑이라는 목표와 만나는 미래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