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상장 추진 기업에 공모가를 낮추도록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모가의 거품을 제거하고 시장을 활성화하는 조치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시장가격 결정 시스템을 왜곡하는 월권 행위라는 반론이 엇갈리고 있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초 상장하는 씨엔플러스의 공모가는 1만1500원으로 결정됐다. 씨엔플러스가 지난 17일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예측에서는 1만2000원 이상에 주식 배정을 신청한 곳이 50%를 웃돌았다. 공모가격은 수요예측을 통해서만 정해진다는 점에서 공모가가 1만2000원을 넘어야 정상이지만 실제 공모가는 이를 밑돌았다.

지난주 공모주 청약을 마친 테라세미콘도 비슷하다. 수요예측에서 1만4000원 이상의 가격을 써낸 기관이 80%를 넘었다. 1만6000원 이상을 부른 곳도 41%였다. 하지만 공모가는 이에 미치지 못한 1만3500원으로 정해졌다.

이처럼 수요예측보다 공모가가 낮게 정해지는 것은 거래소가 공모가를 낮추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지적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신고서를 낼 때 공모희망가격대를 낮추도록 한 뒤 수요예측을 마치면 거래소와 협의토록 해 또 한번 가격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공모가를 높게 잡다 보니 상장 후 주가가 떨어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모가 거품을 제거하라는 뜻에서 원칙적 수준의 권고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신규 상장한 종목은 낮은 공모가 덕분에 주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거래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17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로보스타는 첫날 공모가를 훌쩍 뛰어넘은 뒤 19일까지 3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지난 8월 상장된 제닉과 대한과학 아이씨디 넥솔론 주가도 공모가를 크게 웃돌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자율적 가격 결정에 관리 · 감독기관이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벌써부터 공모가가 낮아 상장을 포기하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며 "인위적인 공모가 낮추기가 장기적으로는 기업공개(IPO) 시장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